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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농장

재준아범 2018. 9. 2. 06:51

지금은 돌아가신 분도 있지만, 내게는 이모가 넷 있다. 다른 이모들은 그저 평범한 시골 아낙네로 사셨지만 충북 영동에서 농장을 일군 둘째 이모의 생은 많이 별나다. 어렸을 때 우리 형제에게 둘째 이모의 별명은 '안경이모'였다. 둘째 이모는 대학을 졸업했다. 내 부모님 세대 친가외가를 통틀어 유일한 대졸이다. 그냥 남이 가니까 나도 가보자는 것도 아니었고, 당시 외가 형편상 부모 도움을 받아가며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 이모는 어떻게 어떻게 대학을 졸업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정부기관 어딘가에서 노동관계 일을 하셨다고 하니 뭔가 뜻한 바 있어 대학을 갔으리라 짐작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언제나 뭔가를 뜻하며 살아오신 분이니 대학 공부인들 건성으로 하셨으랴.. 이후에 공무원직을 그만두고 한동안 수녀로도 지내셨다 하는데, 내가 이모의 전기작가가 아닌 바에야 이모가 지내온 모든 일의 경과를 알 수는 없고, 대충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쯤에 영동에 땅을 사서 들어가셨던거 같다.

애초 농장의 땅은 돌들 사이에 양념삼아 흙이 조금 섞여있다 표현해도 말이 될 정도로 온통 돌뿐인 땅이었다. 그 많은 돌들을 손의 힘으로 옮겨 비옥한 농장을 만들었으니 여자 혼자의 몸으로 참 큰 일을 한 셈이다. 이모는 그 농장에서 하우스 시설도 없이 유기농 포도를 재배했는데 (이모 주장으로는) 국내 최초로 시도한 일이라고 한다. 나중엔 조그만 영농조합을 만들어서 포도쨈, 딸기쨈 등을 만들어 한살림에 공급하기도 했다. 지금은 현역은퇴? 하신 상태라 쨈공장 경영은 후인이 맡아 하고 있다. 예전부터 농장에는 많은 다양한 손님들이 드나들었는데, 쨈공장을 물려받은 후배님은 대학시절 총학생회장을 하다가 수배를 피해 농장에 숨어들었다가 그냥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전설?을 보유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포도밭도 성당에 헌납하셔서 수사님이 포도 농사를 짓게 되셨는데, 몇 년 전에 친척들을 위해 텃밭에 따로 만들어둔 포도밭 한 줄만 이모가 직접 하신다. 그 포도를 따 가라고 연락을 주셔서 마눌과 주말에 다녀왔다. 우리 가족이 대전, 천안 살던 시절에는 자주 들락거렸었는데, 이제는 일년에 겨우 한두번 정도밖에 얼굴을 내밀지 못한다.

농장에 들어서면 왼편으로 작은 개천이 흐른다. 평상시에는 겨우 수도꼭지 틀어놓은 정도로 수량이 적은데, 이번엔 요 며칠간의 폭우로 기세가 등등하다. 예전에는 여름에 물 많을 시기에 사진에 보이는 부분을 댐으로 막아 작은 수영장을 만들기도 했다. 재준이도 어렸을 적에 여기서 개구리와 더불어 물놀이 좀 했다.



분홍색 상사화가 만발하다. 이모는 농장에 온갖 토종 꽃과 나물들을 옮겨 살렸다. 지금은 상사화와 옥잠화가 만개할 시기인데, 이번 폭염으로 옥잠화는 많이 시들하다. (옥잠화 꽃을 생으로 뜯어먹어 보시라. 정말 맛있다.) 한동안 이 농장에서 충남지역 한살림 회원 봄나들이 행사를 하기도 했었다. 백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서 봄꽃도 구경하고 농장에서 나는 온갖 산나물로 비빈 밥을 즐겼는데, 따로 밭을 만들어 재배해낸 것도 아닌, 그냥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나물들만 뜯었어도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한끼를 대접할 수 있었을 정도로 농장에서 자라는 식물들 대부분이 제 맘대로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사진이... 왠지 밀림을 찍어놓은 거 같은 느낌이네...



수사님이 경영하시는 포도밭은 아직 수확하지 않은 포도들이 많이 남아있다. 포도밭 위에 멀리 보이는 집은 예전에 어린이집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수사님 신부님들의 휴양시설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농장 자체도 산 속에 있지만, 저 집을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산이 시작된다. 우리가 농장에 자주 드나들던 시절에는 버섯이나 고사리, 취나물 등을 캐러 산으로 들어가기도 했었다. 특히나 내 눈으로 능이버섯을 찾았을 때의 신통방통한 기쁨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송이도 따보고 싶었는데.. 낙엽더미 아래 숨어 나는 송이는 나같은 초심자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원두막이다. 여름 더위에도 원두막 안은 시원했다. 예전엔 이 위에서 쨈공장 식구들과 삼겹살에 포도주 꽤나 비웠는데, 지금은 쨈공장이 길건너편으로 옮겨가서 같이 할 사람이 없다. 원두막의 한 모퉁이를 덮고 있는 저 나무는 흔히들 토종 키위라고 하는 다래나무다.

삼겹살에 포도주도 좋지만, 농장에 갈때마다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나물이 듬뿍 들어간 밥상이다. 취나물, 두릅 정도야 (좀 시들었어도) 도시의 마트에서도 얼마든지 구해먹을 수 있지만 금방 딴 고들빼기, 민들레, 초롱꽃 이파리 같은 것들까지 골고루 비벼 먹기는 여기가 아니면 쉽지 않다. 지금은 여름이니 봄나물은 없고, 부추를 넣어 끓인 된장찌개 국물로 어린 열무순과 왕고들빼기를 밥과 비비고, 부추꽃, 도라지꽃, 더덕꽃 샐러드에 호박잎과 깻잎 찐 것을 반찬으로 즐거운 한끼를 먹었다. 내가 먹어본 꽃 중에 제일 맛있는건 부추꽃이다.



포도에 고추, 호박, 오이와 노각, 부추, 가지, 대파, 호박잎, 깻잎, 마늘, 포도+복분자주까지 바리바리 얻어 싣고 돌아왔다. 서울에서 두시간 반 거리. 일년에 한두번 큰 맘 먹어야 다녀올 수 있는 길이지만, 마치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던 사람들이 고향 다녀오는 것 처럼, 영동 다녀오는 길은 늘 차 트렁크에 채운 물건들의 가치로는 계산될 수 없는 넉넉한 마음을 채워오는 것 같다.


이모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P.S : 글을 보신 어무이가 정정명령을 하셨다. 이모의 최종 학력은 대학원 졸, 석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