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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회장댁 방문기 - 위엄을 잃지 않되 위압적이지 않은

재준아범 2018. 10. 11. 19:44

이구회 친구들 중에 제일 출세한 사람을 꼽으라면 경기도 북부에서 여러개의 사업장을 경영하고 있는 깜회장이겠다. 회장 자리에 있지만 오너는 아니고, 회사 규모도 재벌 반열에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어쨋든 나름 규모있는 회사의 회장님이시다. 사업 특성상 명절마다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이 잦은지라, 명절 연휴가 되어서야 겨우 한번씩 갖게되는 이구회 모임에서는 얼굴 보기가 힘들다.

지난 일요일, 이전무, 유원장, 이기사와 함께 깜회장 집으로 놀러가기로 일정을 맞췄다. 왕십리 이마트에서 모여 출발하니 한시간 조금 더 걸렸다. 노련한 유원장이 혹시 약속시간에 너무 앞서갈까봐 일부러^^ 길을 돌아갔다. 북부 지역이라 곳곳에 군부대가 있다. 개중에는 정문에 폐 탱크를 갖다놓은 부대도 있는데, 주로 상급 부대인 듯하다. 어머나.. 그 중에 한 부대가 내가 복무했던 사단의 사령부다 ! 연대로 배치를 받아 복무했으니 사단 사령부는 구경도 해본 일이 없었지만 그래도 반갑고, 내가 있던 연대 본부의 모습은 지금쯤 어떻게 변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여기서 그리 멀지는 않을텐데... 어유지리라는 동네 이름만 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일단 회사 사업장 근처의 식당에서 깜회장을 만났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는 않지만 거의 개발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회사에 손님들이 올 때마다 모시고 갈 수 있는 단골집으로 정해놓은 괜찮은 식당이라 한다. 단골에 지역 유력인사가 오셨으니 룸은 특실로, 메뉴는 소고기다. 눈으로 봐도 상급의 싱싱한 생고기가 푸짐하게 올라왔다. 이 지역이 서울우유 물량을 절반 가까이 공급할 정도로 소가 많은 동네라 하고, 축산 농가로부터 직접 고기를 공급받아 질 좋고 싱싱한 고기를 싸게 내 놓을 수 있다나. 어지간히 배부르게 고기를 구워먹고, 한반도에서 정은이만 못한다는 손가락 하트 쏘며 기념사진 한 장 남긴다. 

점심을 마치고 차 한잔하러 깜회장 집에 갔다. 매너를 아는 이전무가 와인을 한병 준비해와서 빈 손으로 남의 집에 방문하는 민망함은 면했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기특한 녀석. 워메나… 집이 대궐이다. 정원을 둘러보는데도 5분은 걸린거 같다. 역시 사람은 출세를 해야한다. 그야말로 TV 드라마에 나오는 회장님 댁이다. 회장님 댁 답게 사인검 비슷하게 생긴 검도 한 자리를 차지하여 포스를 물씬 내뿜고 있다. 포스팅 읽고 도둑 들까봐 차마 사진을 올릴 수 없음.

잠시 집 구경 하고, 깜회장의 (실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재테크 스토리를 과자삼아 차 한잔 나눈다. 회사일을 잘하든 못하든 재테크는 마눌님께 맡겨드려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긴다. 회사 사업장도 잠시 둘러볼겸,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감악산 출렁다리도 구경할겸 집을 나선다. 휴일이지만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꽤 있다. 직원들의 인사에 깜회장은 ‘어~ 그래 수고가 많다’며 답을 해준다. 한동안 TV 출연 좀 하시던 어떤 회장님들은 아래 사람들을 개부리듯 하더만, 우리의 깜회장은 역시 다르다. 고등학교 시절 깜회장은 개구진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익살이 많은 편인데다가 소위 ‘후까시’ 와는 거리가 멀던 친구라 자리가 올라가도 예전 그대로인데, 회사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되 위압적이지 않도록 아래 사람들한테 처신을 잘 하는거 같다. 머리속은 많이 복잡하겠다.

출렁다리는 주차장에서부터 5분 정도 산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짧지만 경사가 좀 있는데, 시골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깜회장은 잘도 올라간다. 허약한 서울사람들은 강릉에서도 여기서도 연패하고 있다. 일요일 오후4시쯤 되었는데도 사람이 제법 많다. 나는 보통 이 시간이면 집에서 운기조식하며 또 다른 한 주를 준비하는데.. 이전무가 셀카봉을 가져왔으나 제대로 쓸 줄 몰라 한참을 헤맸다. 블루투스 페어링같은 IT 문제라면 전공이 맞지 않아서 그러려니 하겠는데, 셀카봉 펴고 폰을 고정시키는 기계적인 일을 무려 금속과 나온 사람이 그러고 있으니.. 어쩌랴.. 패션은 20대이나 나이는 어쨋거나 50 중반인것을..유원장까지 달려들어 둘이서 어렵사리 셀카봉을 세팅하고, 본전을 뽑겠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찍었다.

또 손가락 하트 뿅뿅. 칫.. 아저씨들이...

이전무는 오늘도 멋있다. 산에서도 멋있다. 

출렁다리 위로 정자 비슷한 전망대가 보이길래 거기도 올라가봤다. 눈으로 보면 가까운데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가자니 거리가 좀 된다. 전망대 위에서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긴 폭포가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보면 근처에 운계폭포라는게 나오는데 아마도 이건가 싶다.


이번엔 전망대 위에서 멀리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한 장. 내가 계속 뒤에서 사진을 찍으니 이기사가 혼자만 얼굴 작게 나오려고 저런다며 비난한다. 여보게... 앞에 서나 뒤로 빠지나.. 본래의 얼굴 크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야...

참고로, 아래 사진에서 가장 큰 스티커에 가려진 사람이 이기사다.

그래서, 출렁다리를 다시 건너며 마지막으로 앞에 한번 서줬다. 이기사는 맨 뒤로 갔다.

산을 내려오니 조금 이르지만 저녁 시간이 가까워서 사모님까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했다. 깜회장와 유원장이 각자 근방에 짬뽕이 기막힌 집을 알고 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같은 집을 얘기하는 거였다. 대단한 집인가 보구만… 그래봐야 시골 맛집이지.. 요즘 여기저기 매운 짬뽕으로 승부거는 집 많던데.. 하며 긴가민가하고 가봤더니.. 어머나 세상에.. 다섯시 오십분에 갔는데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오늘 장사 마감이란다. 큰 기대를 안했지만 막상 못 먹게되니 아쉽고, 열린 문으로 새어나오는 기막힌 냄새가 안타깝다. 언젠가 다시 와서 꼬옥 먹어주리라 다짐하고 근처 순두부집으로 향했다. 두부전골과 전을 시켰는데 짬뽕 못 먹은 아쉬움을 어지간히 달래줄 만큼 맛이 좋다.

 

그래도 그집 짬뽕은 언젠가. 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