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남자에게는 사냥 본능이 있다

재준아범 2019. 6. 2. 12:46

시간과 취향을 맞춰 여럿이 어울려 놀러가는 일은 대단히 즐거운 행사이지만 그런 합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더구나 그 상대들이 서로 연령과 직급이 다른 직장 동료라면 ? 요즘 같은 분위기에 자칫 직장 갑질, 힘희롱으로 몰리기 십상이라 회사 차원에서도 그런 일은 그리 고운 눈으로 봐주기가 쉽지 않다. 주말 동안 같은 파트의 동료 네 명과 1박2일 캠핑을 다녀왔다. 우리팀 웅차장, 옆 팀의 운팀장, 마이스터 일차장, 총각 혁과장. 이번의 멤버 중 세 명이 포함된 5년 전 1박2일 행사가 며칠 전 술자리 담화에서 나왔고, 그 얘기가 발전하여 5년만의 앵콜 행사가 이루어졌다. 매 주말 즐거운 이벤트에 목말라하던 나는 파트의 신참임에도 불구하고 신난다고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총각 혁과장은 과연 어떤 마음으로 합류한 것인지.... 혁과장만이 알 일이다. 절대 강요는 없었음.      

준비는 거의 아웃도어의 강자 운팀장님이 혼자 도맡아주었다. 행사 기획에서부터 크고 작은 준비물 챙기기에 총무 노릇까지 맡아 하다가 전날 밤에는 마트 장보기까지 혼자서 해결해 버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거의 개인 물품 준비하고 사무실에 있는 공용 물품 운반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역사와 전통이 길고 긴~ 사무실이라 침낭에서부터 족구공에 이르기까지 공용 물품도 다채롭다). 요리 수련중인 나는 코펠 세트와 양념을 맡았다. 고추장, 고추가루, 굵은소금, 고운소금, 간장, .... 들을 집에 있는 통 째로 가져가면 마눌님한테 야단도 맞을 것이고 짐도 꽤 될 일이라, 이참에 다이소에서 쪼꼬만 캠핑용 양념통 세트를 장만해 보았다.


그 외에 침낭, 캠피의자, 소형 테이블 등 개인 물품을 챙기자니 부피가 제법 되어 대형 배낭에 구겨구겨 겨우 집어넣었다. 이 배낭은 2박3일 지리산 종주에 딱 한 번 쓰여지고는 거의 20년 간을 계속 처박혀 있다가 요즘에야 팔굽혀펴기용 중량밴드로서 겨우 체면 치레를 하는 신세이니, 그야말로 20년 만에 배낭 노릇을 제대로 한다 하겠다.


무겁다... 재작년 가을 난지도에서의 캠핑 때에는 학팀장 혼자서 4인분의 텐트와 에어매트, 침낭에 온갖 살림살이까지 배낭 하나에 바리바리 묶어서 노을공원을 올라왔더랬는데, 새삼 학팀장의 초인적 능력에 또한번 감탄한다.

토요일 아침, 나는 도농역 앞에서 운팀장님을 만나 운팀장님 차로 캠핑장까지 가기로 하고 집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도농역앞 정거장에 내리기 1분전... 운팀장님이 전화를 했다. '제가 지금 상추랑 깻잎 뜯으러 텃밭에 왔는데요, 제 차가 브레이크가 고장나버렸어요, 공업사에 수리를 보내야 하겠습니다' .... 우헤헤~ 1박2일 행사를 무사히 치르기 위한 액땜이렸다~ 원래 차 한대로 오려던 분당쪽 세 명이 급히 계획을 바꿔 차 한대를 더 몰고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시반 쯤에 캠핑장 도착하여 교외로 가는 길이 아주 붐비는 시간대는 피할 수 있었으니, 원래 9시에 도착하는 것으로 미리미리 부지런한 계획을 세워둔 덕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캠핑장 위치는 가평군 북면. 웅차장 왈 북면=NorthFace !

We are going for north face ~      

우~우~예~예~~ We are going for north face ~

캠핑장 입구의 간판, 작년에 돌아가신 고 최희준 선생님의 '하숙생' 노랫말을 절로 떠올리게 하는... 올드한 문구다.

간판이 대표해주는 캠핑장의 올드한 분위기는, 여기가 전에는 물놀이 하러 온 유객들을 상대로 평상을 주욱 늘어놓고 닭백숙 류의 음식을 팔던 식당이었는데 캠핑이 대세인 요즘의 시류에 마지못해 캠핑객까지 받게 되었으나 그쪽으로는 영 의욕도 재주도 없기에 점점 쇠락해가는 처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시설은 비록 수십년 된 듯 낡고 초라하나 캠핑장이 위치한 터가 기가 막힌다.

캠핑장 옆으로 화악천이 흐르고 있다. 물이 모자란 좁은 실개천도 아니고 반바지로 들어가 놀기에는 약간 겁나는 큰 물도 아니다. 이 개울은 우리 텐트가 위치한 자리 아래로 이백 미터쯤 아래에서 가평천과 합류한다. 평화롭다. 캠핑은 Peace~ 바로 주변에도 캠핑장이 몇 개 더 있고, 다들 일반적인 캠핑장들에 비해 요금이 비싼 편이나 자리 만으로도 그만한 값어치는 하겠다 싶다. 우리가 이용한 캠핑장은 그나마 이 주변 캠핑장 중에는 가장 저렴한데다 운팀장님의 단골(!) 파워로 요금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청양고추를 섞은 부추부침개에 각자의 취향대로 (나는 막걸리, 혁과장은 맥주, 나머지는 소주) 알코올로 충전하고, 매운탕 재료를 사냥하러 바지 걷고 화악천으로 내려간다. 이번 1박2일의 메인 이벤트 ! 출정하기에 앞서 기념사진 한 장.

된장 넣은 통발을 놓고 물고기가 자발적으로? 들어가주기를 기다린 일은 한 두 번 해봤으나, 물을 휘저으며 족대(천렵하는데 쓰는 그물을 족대라고 한다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다)를 써서 사냥해보기는 처음이다. 족대를 잡은 사람이 물 아래쪽에서 가만히 족대를 펼쳐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물 위쪽을 포위하면서 돌을 들치고 물을 헤쳐 놀란 고기들을 그물로 몰아대는 식으로 잡는다.

물 속 돌에 이끼가 많이 끼어 자칫 실수하면 우리가 물고기가 될 판이다. 원래는 큰 비가 와서 한바탕 씻어내려준 후에 와야 좋다는데, 그러기를 기다리면 너무 한여름일 듯 하다. 여튼 생각보다는 고기가 잘 잡힌다. 돌고기와 꺽지를 대충 반반 잡았고, 미꾸라지도 한 마리 건졌다. 뭐... 통발 몇 개 이용하면 훨씬 편하게 많이 잡을 수 있겠으나, 드러누워 저절로 들어오는 녀석들을 수확하는 것 보다는 내 몸을 움직여 물고기와 직접 씨름하는 것이 훨씬 재미가 좋다. 나중에 배를 따기위해 물통을 확인해보니, 다른 녀석들은 다 죽어있는데 미꾸라지만 홀로 살아남아 있었다. 미꾸라지가 강하다. 우리 외에 다른 사이트의 일행 중 한 명도 열심히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는데, 혼자이기는 해도 이 분야 전문가인 듯, 급기야 우리에게 족대 쓰는 법을 교정해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그 OJT 일종의 마케팅이었는지... 나중에 먼저 가면서 자신이 쓰던 주낙을 우리한테 돈 받고 팔더라...). 취사 담당인 나는 매운탕 국물을 만들기 위해 먼저 올라와서 귀한 OJT 기회를 놓쳤다.ㅋ... 매운탕을 끓이고 밥을 지어 먹으니 세시가 넘었다. 아무렴 어떠냐 ~ 먹을 것도 널려있고 Peace도 충만한데 ~ . 내장만 제거하여 생전의? 모습 그대로 익혀진 고기들은 그중 큰 녀석은 제법 딱딱하게 뼈가 씹히기까지 한다. 딱히 기름기가 우러나지도 않는 자잘한 민물고기는 사실 매운탕으로 먹어봐야 양념 맛이긴 하지만 나름 직접 사냥한 결과물이라 대견하다. 

점심 먹고 족구 한 판. 3월에 있었던 파트 워크샵에서도 쓰던 공인데 오늘은 단단히 굳은 땅에서 하니 바운드가 장난 아니다. 자꾸만 공이 머리 위로 날아가 버리니 거의 장애인 족구 수준이다. 그나마 마이스터 일차장이 제일 잘한다. 역시 마이스터는 못하는게 없다. 

족구가 끝나니 고기를 구울 차례. 하하...그야말로 놀고먹고놀고먹고... 아웃도어의 강자 운팀장님은 고기도 잘 굽는다. 장작불 구이에 서투른 사람들은 센 불에 성급하게 고기를 올려 겉은 숯검댕이에 속은 날것인 고기를 만들기 일쑤인데, 운팀장님은 차분하게 장작이 숯으로 익을 때 까지 기다린다. 덕분에 Peace 충만한 분위기에서 맛있는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장작이 숯으로 변하기 전 까지 일단 부추부침개로 탄수화물 충전. 탄수화물이나 지방을 먼저 먹고 단백질을 섭취해야 단백질이 근육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몸집에 목마르다.... 고기를 굽는 동안 시나브로 날이 어둑해진다. 어두워진 상태에서는 고기가 익었는지 탔는지 잘 알아볼 수가 없다. 작업용 조명등을 세 개나 준비해서 달았지만 뒤에서 비스듬하게 비추는 조명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는데, 혁과장이 자전거용 소형 랜턴을 화덕 위에 매달아 수직으로 빛을 비추니 깔끔하게 문제가 해결되었다. 조도보다 각도가 중요함을 ! 오늘도 한 수 배우고 간다.

우리 일행 외에 오늘 이 캠핑장에 텐트를 친 팀은 딱 한 팀 뿐이고, 그나마도 멀찍이 떨어져 자리를 잡았으니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아래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요란하길래 우리는 노래를 틀었다. 지니뮤직 스트리밍을 이용하니 원하는 노래를 골라서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 심지어 방금 선택한 노래와 비슷한 분위기의 후속곡을 저절로 틀어주기까지 한다. 나의 신청곡은 다섯손가락의 '이층에서 본 거리', 운팀장님은...뭐였더라...대학가요제 무슨 노래였고... 마이스터 일차장님은 윤시내의 '공부하세' .... 허 여기와서까지 공부를... 마이스터는 공부도 열씨미 한다.

날은 시원하고 장작불은 뜨겁게 타고 배경음악은 좋고... 분위기에 취해가는데 이번에는 황소개구리 울음소리가... 아니고 운팀장님이 앉은채로 코고는 소리가 ㅎㅎ... 오전부터 엄청 달리더니.. 이어서 슬슬 혁과장도 꾸벅거리고 웅차장도 스르르 눈이 감기는데 오로지 마이스터 일차장님의 횡설수설만 끝도 없고 방향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스터는 힘도 좋다.

중저음의 개구리 울음소리로 잠이 들었다가 높은 톤의 새울음 소리로 잠을 깼다. 계란후라이에 라면, 식은밥으로 아침먹고 설거지하고 짐 정리까지 마친 후에 운팀장과 함께 가볍게 아침 산책 한 번 하고 출발.


May the Peace be with you. 

See you, North 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