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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는 어디에

재준아범 2019. 6. 13. 19:52

남한강 자전거길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잠깐동안 섬강을 따라가게 된다. 재작년 가을 그 길을 지나면서 언제 한 번은 섬강길을 따라가 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만 하루만에 왕복할 수 없는 거리인지라 그간 이 궁리 저 궁리가 많았다. 어차피 하루만에 안 될 길, 아예 1박2일로 끝에서 끝까지 달려보자 작정을 하고 시외버스를 타고 횡성까지 가서 상류로 거슬러 횡성댐까지 올라간 후에 여주역까지 내려오는 계획을 짯다. 이매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거리까지 합하면 총 115키로 쯤 되겠다. 중간에 캠핑을 하자니 짐자전거 그란뚜르를 타야 하는데, 덩치 큰 그란뚜르에 캠핑용품까지 시외버스에 실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어쨋든 캠핑용품을 실은 채로 그란뚜르를 버스 짐칸에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캠핑용품들은 대형 배낭 하나와 소형 배낭에 나누어 담았다. 필수품이 아닌 캠핑의자와 소형테이블은 두고 가기로 했다. 

전날 저녁에 시외버스 모바일 예매로 확인하기로는 겨우 한 자리만 예약되어 있어 버스 짐칸이 비좁을 일은 없겠다 안심하고 예약했는데, 막상 버스에 올라타니 십여명의 승객이 있다. 승객이 많지 않은 노선이라 굳이 예약하는 수고로움을 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란뚜르는 생각보다 쉽게 짐칸에 실렸다. 뭐든 처음 해보려 마음먹는게 어렵다. 이제 그란뚜르를 버스에 싣고 여기저기 원정을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대된다~

6:50에 출발한 횡성 가는 시외버스는 중간에 양평, 용문 등등을 거쳐 두 시간 만에 횡성 터미널에 도착했다. 날이 쨍~ 하니...일사병 조심해야 할 듯. 터미널 근처에서 간단히 김밥 한 줄 사먹고 출발한다. 섬강에서 천렵하는 사람, 올갱이 잡는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지난주 운팀장님한테서 천렵하는 요령을 배웠는지라 새삼 달리 보인다. 

 섬강변 자전거 길은 횡성댐 가는 중간에 끝나버리고 갓길도 없는 차도변을 달려야 하지만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아 낮 시간이면 별로 위험하지 않다. 나중에 횡성댐길로 접어들면 차가 거의 없다.

저 위에 횡성댐이 메롱 하며 서 있다. 아담하다. 댐 위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을..또 미련하게 오른다. 기운 떨어진 오후시간이었다면 이런 짓 안했을 텐데..굳이굳이.. 아... 이 '끝에서 끝까지'를 향한 이놈의 집착을 어찌할거나.. 헉헉. 댐 위에 오르니 뭐 별 것도 없다. 물문화관이라고 건물이 하나 있지만 화장실 하나 쓸만하다는거 말고는 볼만한 전시물도 없다. 뭔가 볼만한 것을 꾸미려 했다면 정말 제대로 만들든지, 아니면 아예 말든지. 이런 엉거주춤 무의미한 문화관은 대체 왜 운영하고 있을까. 댐 아래에는 수림공원 이라는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댐에서 다시 횡성읍내로 돌아오니 겨우 11시를 약간 지난 시간이다. 점심 먹기는 이른 시간이라 그냥 지나친다. 횡성읍내를 지나면 바로 또 차도변을 달려야 하고, 길은 섬강을 벗어나 산으로 간다. 섬강우회로란다. 섬강 구간이 끝나고 남한강을 만날 때 까지 총 세번의 우회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냥 잠깐 돌아가는게 아니고 그야말로 멀~리멀리 산으로 간다. 힘도 들고...갓길도 변변치 않은 자동차길이라 위험하기도 하고...  여튼 첫 번째 우회로는 고개를 두 개 넘어 내려가면 다시 섬강과 만난다. 섬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면 곧 우측의 강변으로 내려가는데, 길 초입이 포장 상태도 나쁜데다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어서 길을 잘 못 들었나 ? 잠시 망설이기도 했다. 자전거길을 만나면 이렇게 경치가 좋은데... 자전거길 보다 우회로 구간이 더 많으니.. 자전거 타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쉽지만, 이런 자리를 파헤쳐 굳이굳이 자전거길을 내는 것도 자연에 대한 도리는 아닐거라 생각하고 간다.

오디가 한참 익는 계절이다. 우리집 근처에도, 여기 횡성에도 여기저기 오디가 널려있다. 마침 이 사진을 찍은 자리에서 머리 위에 익은 오디가 많이 열려있길래 잠시 오디 맛을 즐겼다. 대개 사람 손이 닿기 쉬운데에는 남아있는 것들이 없는데, 여기는 워낙 사람이 드문 곳이라 그냥 손만 뻗어도 잡히는 것들이 많다. 근데 문제는... 사람이 드문 곳이라 식당이 없다... 배는 고파오는데... 어쩌다어쩌다 만나는 식당은 민물매운탕집 뿐... 그냥 참크래커나 우물거리며... 배가 고픈데 또 만난 우회로. 이번에는 상당히 가파른 고개가 버티고 있다. 맞은편에서 로드를 타고 내려오는 젊은 여성동지께서 주먹을 쥐며 '화이팅' 을 해준다. 그러나... 이 몸은 화이팅 하기에는 너무 부실하다우... 내려서 끌바. 캠핑용품을 실은 그란뚜르는 끌바도 힘들다. 고개를 넘으니 돼지문화원이라는 식당이 있다. 뭔...문화원 ? 치악산금돈이라는 돼지고기 브랜드를 홍보할 겸 운영하는 곳이다. 식당도 있고, 아기 돼지랑 놀 수 있는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1인분 점심 메뉴로 주문이 가능한 메뉴가 돈까스 밖에 없어 돈까스를 시켜먹었다. 돼지고기김치찌개는 2인 이상으로만 주문이 가능하단다. 식당 매출로 돈 벌 생각은 별로 없는 듯하다.

더운 여름에 땀 흘리며 자전거 탄 후에 돈까스라니 ..... 나는 돈까스도 좋아한다~ .흑.

가는 중간에 간현유원지와 레일파크라는 데가 좀 유명한 거 같아 들러본다. 사실은 굳이 찾아가려 하지 않아도, 자전거길이 그 앞을 지나도록 만들어져 있다. 간현유원지는 원래는 청평유원지 처럼 섬강으로 합류하는 개울에 조성한 여름철 물놀이 유원지인거 같은데, 지금은 소금산 출렁다리 덕에 그야말로 '핫 플레이스'로 격상한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올라간다. 지난해 가을에 친구들과 다녀온 감악산 출렁다리에도 사람들이 그리 많더니, 출렁다리가 유행이다.

여기의 주점 마다에서 파는 동동주 이름도 출렁다리 출렁주란다. 유원지 입구 광장에서 락밴드와 사물놀이가 합주 공연을 하고 있길래 가까운 편의점 파라솔 그늘에 자리잡고 부라보콘을 먹으며 한동안 쉬어주었다. 일사병 예방. 희한하게도 사물놀이는 강한 락음악과 궁합이 잘 맞는다. 징과 북이 베이스의 비트를 돋우고 전자기타와 꽹과리, 태평소 가락이 서로를 휘감는 듯하다. 덩달아 드럼소리도 더 신이 난다.

간현유원지 이후의 길은, 물론 중간중간 포장 상태가 엉망이거나 비포장인 구간도 있지만 우회로로 빠지는 일 없이 전반적으로 괜찮다. 다음에 섬강을 다시 찾는다면 남한강 쪽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만 다녀오는 경로가 좋겠다. 이보다 상류로 올라가면 '우회로'를 만나야 하니... 나는 자전거 전용도로 보다는 자동차와 경운기도 통행이 가능한, 농로삼아 닦아놓은 이런 길이 더 좋다. 드물게 자동차가 지나가긴 하지만 절대 엑셀을 밟을 수 없는 좁은 길이고, 아스팔트 포장이라 자전거도 부드럽게 잘 나간다.

원래는 문막체육공원에서 노숙을 할까 했지만 시간도 너무 이르고 마땅한 자리가 아닌 거 같아 조금 무리하더라도 강천섬에서 캠핑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문막읍을 지나면 가게가 없을 거 같아 문막읍에 들러 저녁-아침거리 장을 봤다. 다리를 건너 원주에서 여주로 넘어가면 오늘의 마지막 고개를 만난다. 남한강길을 따라 내려갔던 때에도 넘었던 이 고개는, 제법 긴 편이기도 하지만 구비없이 직선으로 쭈욱 뻗어있어 고개 밑에서 고개마루가 뻔히 보인다. 길이 구불구불하여 어디서 끝날지 알 수 없는 고개에서는 낑낑대며 오르다 결국엔 힘에 겨워 끌바를 하고보니 사실은 고개마루가 코앞이더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고개에서는 끝까지 자전거를 탄 채로 고개를 넘느냐 마느냐의 선택은 오롯이 나의 체력과 의지에 달려있는데, 상태가 좋으면 '어머나 얼떨결에 소조령을 넘어버렸네?' 하는 일도 있는 반면에 '아우씨 이런 고갤 못 넘기고 끌바를 하다니..' 하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목적지가 뻔히 보이는 고개에서는 처음부터 질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중간에 쉽게 포기하지도 못하게 하는...이상한 뭐시기가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기어이 고개를 오르게 한다. 아이고 힘뺀다. 그래서 그런가... 아침 시작할 때 부터 이 고개 저 고개 넘을 때 마다 마음속으로는 계속 이 고개를 의식하고 있었다. 이상한 고개야...

고개를 넘어 신나게 내려가면 강천리. 강천섬에 들어가기 전에 '강천리 구판장'이라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출발하기 전부터 지도로 확인해서 알고 있었지만 '구판장'이라는 이름이 붙은 가게에 물건이 있어봐야 뭐가 있겠나 싶어 문막읍에서 장을 본 것인데, 그래도? 확인차 들어가 보니 그냥 시골 마을 생필품이나 파는 구판장이 아니라 캠핑용 구판장이다. 강천섬에서 하루밤 지내는데 필요한 물건은 다 있다. 괜히 문막읍에서 부터 짐 싣고 달려왔다는 후회가 들고, 시골 구판장이라고 깔본게 혼자 괜히 미안해서 예의상 막걸리 한 통 샀다. 덕분에 혼자서 막걸리 두 통을... 과음했다.. 아이고 두통이야.. 

강천섬은 그간 낮 시간에 들르기만 했고, 캠핑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천섬 안에는 아주 조그만 화장실 하나 말고는 아무런 위생 시설이 없다. 그래서 그냥 물수건으로 대충 닦고 잘 생각이었는데, 어머나 강천섬 들어가기 전에 길에서 좀 떨어져 커다란 화장실이 하나 있다. 아이고 신나라~ 얼굴에 두껍게 발라진 선크림도 말끔히 씻어내고 옷 밖으로 드러난 부분까지 깨끗하게 다 씻고 상쾌한 기분으로 강천섬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강천섬 입구 주차장에 주차된 차가 대충 백 대도 넘는다. 그러고 보니 토요일 오후에 강천섬에 다다른 것도 처음이다. 생각보다 노숙자가 많다;; 차량 진입이 금지된 섬 안으로 사람과 짐을 날라주는 전기자전거 택시도 처음 본다. 나처럼 자전거에 캠핑용품을 싣고 온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6시가 넘어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나니 아주 어두워졌다. 보통의 캠핑장은 이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장작 태우는 불꽃이 요란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바베큐나 캠프파이어를 하지 않는다. 단속하는 사람이 없어도, 아무 흔적도 남기지 말고 다녀가라는 무료 캠핑장의 예절을 지키기 위해 다들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텐트 안에서 물수건으로 여기저기 깨끗하게 닦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든다. 오늘 달린 거리만 80키로가 넘으니 그란뚜르에 캠핑 짐을 싣고 달리기로는 기록적이다. 덕분에 후유증을 톡톡히 앓았다. 그나마 몇 달 전에 새로 장만한 안장 덕분에 엉덩이 통증은 별로 없다. 100% made in Italy ~ 이태리 놈들은 심지어 이런 디자인도 잘 한다.

시골에서는 보통 닭울음 소리나 개짖는 소리로 아침을 시작하지만, 여기서는 가까이서 작은 새들이 날아으르는 푸르르릉 날개짓 소리로 아침을 시작한다. 그 소리가 왜 이리도 크게 들리냐...


섬강의 '섬'은 두꺼비를 의미한단다. 섬강변 어딘가에 있는 바위가 두꺼비를 닮았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 두꺼비는 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