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가족여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더니, 지난 겨울에 방콕을 다녀온줄 알았는데, 이 글을 쓰기전에 방콕 여행글을 찾아보니 벌써 2년이 지났다. 무려 2년만의 가족 여행이다. 코로나 탓도 있겠고.. 각자 살기도 (나는 놀기도) 바빴고.. 이번에도 재준이가 일정 계획을 짰다. 근데... 겨울 바닷가에서 대체 뭘 하냐...
마눌도 재준도 야행성이라 일요일 10시반 넘어 천천히 출발, 거의 두시가 다 되어 속초에 닿았다. 청초호 주변의 춘선네라는 곰칫국 잘한다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도착 직전에 주차문제를 알아보러 재준이를 시켜 전화하게 했더니 운전중의 소음을 뚫고 퉁명스런 대꾸가 내 귀에도 넘어온다. 대략 '곰치가 다 떨어졌는데 주차는 무슨 놈의 주차냐' 는 식으로, 마치 곰치 떨어진게 우리 탓이라는 듯 쏘아댄다. 사장이 돈으로 배가 불렀나.. 종업원이 손님치레에 지쳤나.. 냉장고에 곰치가 그득하다고 해도 그 집을 다시 찾을 일을 없을 거 같다. 이미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지라 할 수 없이 그냥 동명항 근처 적당한데 주차하고 길을 가다 처음 마주친 속초곤지해물뚝배기라는 식당에 별 기대 없이 들어갔는데.. 아싸~ 맛집이로세 ! 주재료인 곤이(곤지)도 괜찮았지만 푸짐하게 들어간 조개로 씹는 맛도 살리고 국물맛도 살렸다.
만족스런 점심을 먹고 속초중앙시장으로 향했다. 하필 공영주차장 공사중이라 긴 줄을 늘어선 끝에 간신히 주차했다. 주차장에서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지나치는 사람들 대부분이 만석닭강정 박스를 두어개씩 들고 다닌다. 역시 속초시장은 만석닭강정 ? 시장이 아주 크고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점포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사람도 북적이고.
재준이는 다른 가게 닭강정을 선택했다. 닭강정 말고 오징어순대로 만든 전도 좀 샀다. 원래 횟집을 찾아 저녁을 먹기로 계획했지만, 이만큼 먹거리를 장만했으니 아예 회 한 접시만 더 장만하면 숙소에서 한가하고도 푸짐한 저녁을 즐길 수 있겠다싶어 지하 회센터로 내려갔다. 감히. 서울에서도 바가지 무서워 찾지 않는 시장 회센터를. 감히. 이집저집 기웃거리며 흥정도 좀 해보고.. 재준이는 연신 인어교주해적단에서 시세를 확인하면서.. 결국 (어느 횟집 여사장님 미모에 끌려 ?) 밀치, 청어, 멍게를 골라 회를 떳다. 음.. 뭐.. 바가지 쓰지 않고 적당히 잘 산거 같다. 혹시나 먹거리가 모자랄까 싶어 떡볶이도 1인분 장만하고 (결국 먹거리가 남아 돌았지) 차에서 먹을 주전부리로 흑임자 입힌 유과도 한 봉 사들고 시장을 나왔다.
숙소로 가는 길에 능파대를 구경했다. 바닷물의 염분에 의해 바위가 침식되어 아주 묘한 모습을 만들어냈다. 글로발하신 마눌님께서는 호주 어디 같다고 호들갑이다. 여기가 다이빙 포인트인지 근처에 다이빙 장비를 갖춘 가게가 몇 있다.
숙소는 풀빌라 펜션이다. 허어.. 이런데를 또 와보네~ 출세했는가... 객실이 복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위층은 침실, 아래층에는 바다를 보며 뜨끈한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는 2인 월풀 욕조가 있다. 호사스런 욕조의 효과인지? 왠지 물마저도 온천수 느낌이 난다.
저녁 식사 전에 마눌과 재준이 산책을 다녀오면서, 혹시나 저녁거리가 모자랄까봐 (그럴리가!) 라면 두 봉지를, 혹시나 술이 모자랄까봐 (그럴리가!) 심층해양수로 빚은 막걸리 큰병 한 병을 더 사왔다. 심층해양수로 빚어서 그런지.. 편의점 냉장고가 부실해서 그런지.. 막걸리가 시큼하당? 시큼하기는 해도 불쾌한 느낌은 없어서 심층해양수의 맛이라 생각하고 맛있게 마셔주었다. 떡볶이는 반을 남겨 다음날 아침 펜션에서 제공해주는 샌드위치에 곁들여 마저 먹었고.. 오징어순대전도 반도 못 먹어 나머지는 서울로 가져왔고.. 라면은 그냥 서울로 올라왔고.. 집에서 준비해간 양주도 재준이 입으로만 한모금 들어가고는 서울로 곱게 돌아왔다..
시큼한 막걸리로 알딸딸해진 기분에 배도 잔뜩 부르고,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호사로운 스파를 하고 나니 더는 할 일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다. 파도소리 들으며..잤다.
다음날 아침 마눌과 재준이는 일출을 보겠다고 식전 산책을 다녀왔다. 잔뜩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진은 잘 뽑았네.
우리 마눌님 사진찍는 솜씨는 이제 작가의 경지에 오른 듯 하다.
나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아메리카노 한잔 뽑아들고 따로 산책을 나섰다. 커피를 든 고독한 개저씨.. 씰데없는 갈매기떼만 만나보고 왔다.
펜션을 나와 화암사라는 절 구경을 하러 갔다. 화암사는.. 그냥.. 대한민국에 널리고 널린 흔한 절 중의 하나다.. 절 자체는 별거 없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했지만 다른 흔한 절들처럼 몇 번 불난리를 겪은 후라 오래된 유물 같은건 없다. 다만 ! 절이 마주하고 있는 이 수바위라는 바위가 아주 대단하다. 불심 없는 나같은 중생마저도 절로 고개 숙여 합장하게 만드는 장엄함이다. 산을 올라 수바위 옆까지 오르면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미세먼지 덕에? 울산바위를 겨냥한 사진에 수채화 느낌이 난다.
경내 찻집에서 만난 부엉이. 내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삼았다.
항상 깨어 있으라...
화암사 구경을 마치고 또! 청초호 근처의 후포식당이라는 집을 찾아 생선조림을 먹었다. 가자미? 간재미? 망치? 장치? 대략 이렇게 네가지쯤 되는 물고기가 섞인 조림인데 양도 푸짐하고 맛도 좋~다. 특히 장치?라는 고기가 식감이 좋았다.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출발. 대략 4시반쯤 집에 도착해서 마눌님은 대충 뒷정리를 마치고 천안으로 내려갔다. 마눌님은 늘 바쁘시다.
저녁에 집에서 샤워를 하는데 몸이 미끌미끌 부드럽다. 역시 월풀욕조의 물이 좋았던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