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길 따라 대전에서 군산까지
코로나19로 이포보캠핑장은 여주 시민만 이용 가능하게 되었고, 이렇게 공영 캠핑장들이 제한적으로만 운영되다보니 강천섬과 같은 노지 캠핑장으로 캠퍼들이 몰리면서 오염이 심해져 급기야 강천섬은 올 6월에 폐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간 남한강에서 자캠할 때 이용하던 사이트들을 모두 잃었으니 어쩔 수 없이 눈을 먼 데로 돌려본다. 몇 년 전부터 언젠가는 한강~낙동강 종주해야지.. 언젠가는 동해안을 종주해야지.. 언젠가는 영산강+낙동강을 종주해야지.. 꿈만 꿔 왔는데, 이참에 그나마 만만한 금강 종주를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군산에 다다른 후 새만금방조제를 타고 고군산군도까지 다녀오는 여정도 검토했지만 군산에서 고군산군도까지 편도 40키로가 넘는 거리라 일단은 군산까지만 가보기로 했다.
금강자연휴양림 예약 문제도 있고, 그란뚜르를 무사히 버스에 싣기 위해서도 출발은 일요일에 하기로 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7:20에 출발하는 대전행 시외버스로 출발. 나 외의 승객은 4명 뿐이고 버스 짐칸에 실린 짐은 나의 그란뚜르 뿐이다. 둔산 대전청사에서 하차했다. 오늘의 여정은 여기서부터 금강자연휴양림까지 대략 50키로. 여유롭게 놀며 쉬며가도 충분한 거리다. 10년?11년? 동안 근무했던 도시. 고향 방문한 셈 치고 천천히 감상하며 지나가보자.
둔산 시내를 거쳐 갑천을 타기 시작한다. 엑스포공원에 뭔가 큰 건물을 짓고 있다. 사이언스콤플렉스라는데... 완공되면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지 않을지 ? 이에 비하면 내가 있던 시절에 허허벌판에 난데없이 우뚝 세워져 기세등등하던 스마트시티가 아주 왜소해 보인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 우리 가족이 2년 정도 살았던 전민동 엑스포아파트가 보인다. 외벽 도색을 예쁘게 해서 낡은 아파트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진 왼쪽, 예전에 공터였던 자리에는 고층 아파트가 새로이 들어서 있다.
내가 지나고 있는 갑천 동편 길은 시가지 반대편이라 땅만 넓으면 되는 축구장 야구장 외에 시설은 거의 없고 자전거길을 제외하면 가꿔지지 않은 풀밭이다. 반대로 서편의 길은 테크노밸리 등등에 접해 있어 멀리서 보아도 파크골프장, 애견 운동장 등 시설도 조경도 잘 갖춰져있는 듯하다. 엑스포아파트 전에는 구즉동의 사택에서 살았더랬다. 멀리 송강마을 아파트는 알겠는데.. 그 앞으로 날씬한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 내가 살던 아파트는 보이지 않는다.
공기질도 좋고 날씨도 좋은 일요일 오전인데도 자전거가 많지 않다. 요사이 한강 자전거길에서는 '지나갑니다~' 를 외치며 쌩쌩 지나가는 팩라이더들로 짜증이 날 정도인데, 이렇게 한가롭고 평안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으니 원정을 나온 보람이 있다. 구즉을 지나면 신탄진이고, 잠시 후 탄천과 금강이 만나는 지점을 지난다. 신탄진은 굴뚝 산업단지인데도 강변 둑방길로 조성된 자전거길에서는 울창한 나무에 가려 일부러 보려 하지 않으면 공장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탄진을 지나고 나면 세종시에 다다르기까지 마땅한 식당이 없는 듯하여 신탄진에서 약간 이른 점심을 먹는다. 모레 점심까지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없을 듯하니 잘 먹어둬야 한다. 자전거 여행에는 뭐니뭐니해도 순대국이 효자다. 푸짐하고 뜨끈하고 단백질 보충도 되고, 이집저집 고르지 않고 대충 들어가도 어느 정도 맛이 보장되어 있다는 느낌이다. 대청골순대국밥이라는 집을 찾아 들어갔다. 8천원짜리 특 순대국을 시키니 고기도 밥도 푸짐하게 나온다.
배불리 먹고 현도교를 타고 금강을 건넜다. 이후 잠시 파란 패인트로 자전거길 표시만 해놓은 도로를 지나야 하지만 한가해서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 통행마저도 한가하다. 아마도 대전에서 신탄진 방향으로 달리는 대부분의 자전거들이 대청댐을 목적지로 가는 듯 하다. 나처럼 패니어백을 달고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아저씨가 반갑게 인사를 보낸다. '너도 자캠하는구나.. 반갑다~'는 뜻이겠지. 이후에도 가끔 마주치는 짐자전거끼리는 서로 인사를 건넨다. 구름을 찾기 힘든 쨍한 날이지만 더위를 먹을 정도는 아니어서 오히려 상쾌하다.
금강자연휴양림은 금강의 남쪽 강변에 있어 강을 건너기 위해 지도에 표시된대로 부강가교라는 사람과 자전거만 건널 수 있는 작고낮은 다리를 건너려는데 '우천시 이용 금지'라는 게시문과 함께 길을 막아 놓았다. 뭐여...비도 안오는데 ? 차단막 옆으로 돌아 억지로 다리를 건너긴 했는데 다리도 그렇고 다리 앞뒤의 길도 영 션챦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년 여름 폭우로 다리 상판의 포장이 유실되어 버린 듯 하다. 누군가 둑방 아래에서 나무잎을 따고 있다. 뭘까.... 조금 지나니 길가에 뽕나무가 몇 그루 눈에 띈다. 아하~ 이거로구나. 옳거니, 오늘 저녁 라면은 나물 라면 ? 장차 새끼발꼬락 만한 오디가 될 녀석들이 지금은 새끼발톱보다도 작게 달린 뽕나무 잎을 몇 개 땃다. 이렇게 뽕나무 잎을 시작으로 해서 쑥, 엉겅퀴, 고사리, 취나물까지 여기저기서 조그씩 뜯어 모았다. 엉겅퀴 가시는 딸 때도 따끔하더니 끓는물에 삶아도 약간은 기가 살아있다. 씁쓸한 나물 라면~ 딱 내 취향이다.
세종시는 금강의 남과 북에 나뉘어 걸쳐있다. 북쪽에는 정부청사가 있고 남쪽에는 시청이 자리잡고 있다. 금강을 건너는 동그란 모양의 보행교가 한창 공사중이어서 강변길이 막혀 잠시 뚝방위로 올라와 세종시 남쪽 시가지를 구경하게 되었다. 세종시 참 멋있다. 강변 뚝방위에 조성된 공원에는 피크닉이나 바베큐를 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신축 아파트들 모양새가 서초강남 급이다. 금강 북쪽에 위치한 오피스 건물들도 여의도를 연상케한다. 다만... 일요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가 한산하다. 세종시는 아직도 베드타운인가...
시가지로 올라온 김에 저녁거리 장을 보고 다시 출발. 5시가 다 되어 휴양림에 도착했다. 입구 매표소에서 휴양림에는 자전거가 들어가면 안된다고 해서 빌고빌어 얌전히 끌고 들어갔다. 자동차는 되는데 자전거는 안되는 ... 이상한 ... 다행히 야영장은 입구에서 그닥 멀지 않다. 예약해놓은 데크에 올라 일단 막걸리부터 한 통 마시며 천천히 텐트를 친다. 취사장, 샤워장에 따신물도 잘 나오고 화장실 시설도 좋다. 다만, 각 데크의 번호를 표시하는 표시등이 밤새도록 꺼지지 않고 불을 밝혀 숙면을 방해한다.
이틀째 아침, 텐트에 결로가 맺히지 않아 텐트 일광욕을 금방 끝내고 8시 반쯤 출발했다. 오늘은 익산의 성당포구까지 대략 80키로를 달려야 한다. 중간에 공주시와 부여군, 강경읍을 거쳐가지만 모두 점심식사 시간에 맞추기 애매한 위치에 있으니 김밥을 장만해 길 위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한다. 공주시에 다다라 공산성 구경도 하고 김밥도 장만할 겸 자전거길을 잠시 벗어나 시내로 진입했다. 강 맞은편에서 찍은 공산성. 사진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정자가 공산정이다.
공산성 입구 금서루 올라가는 길에 고만고만한 비석들 수십개가 서있는데 대개가 무신무신 나으리 (관찰사 등등) '불망비'란다. 과연 그들이 정말로 나으리들을 존경하고 잊지 못할 거 같아 비석을 세워드렸을까...
가까이 올라가 찍은 공산정. 금강을 내려다보기에 좋은 전망대다.
공산성은 남한산성처럼 성벽위로 산성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게 해놓은거 같은데, 나는 비겁한 퇴행성 관절염 환자라 공산정 까지만 일견하고 돌아내려왔다. 공산성을 나서서 고개를 오르는 오른쪽으로 왠 한옥마을 느낌의 마을에 이어 왕릉 같은게 보인다. 뭔가하며 가는데 눈앞에 보이는 버스정류장
이름이 무령왕릉이다. 지도로 보니 무지 넓다. 그냥 패쓰.
김밥을 장만하고 다시 자전거길로 돌아가기 위해 시내를 벗어나니 대뜸 공주보가 보인다. 애걔걔... 디자인이 꽝이다.
이후로 한동안 고속화 국도변을 따라 가파르지는 않지만 조금 긴 고개 두 개를 넘어야 한다. 이후에 다시 자전거 전용 길이 나온다. 어제는 (아마도 일부러 조성한 듯한) 노란 유채꽃이 길가에 많이 보이더니 오늘은 (설마 이걸 일부러 조성하진 않았겠지 ?) 노란 애기똥풀이 더 많이 보인다. 길가에 한창 자라고 있는 금계국도 요즘 같은 속도라면 보름만 있으면 활짝 필 듯 하다. 오늘 여정의 1/3쯤 지난 지점에서 김밥 한 줄에 삶은 계란 하나를 깨 먹는다. 오늘은 이런 식으로 점심을 두 번 먹을 계획이다. 자전거길이 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이렇게 좌우의 풍경이 한가해진다.
저~~~~~기 멀리 백제보가 보인다. (부여'군'이지만) 도시에 가까워지니 다시 하천부지가 정비되어 있다. 난 정비되고 꾸며진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거는 서울에도 많이 있다.
부여의 궁남지를 구경하기 위해 다시 자전거길을 벗어나 시내로 (군내로?) 진입한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때 조성된 별궁 후원의 연못이었단다. 포룡정이란 정자를 품고 있는 중앙 연못 주위에는 많은 연꽃 연못들이 둘러싸고 있다. 멀리서 보면 연꾳 연못들이 논과 구분이 잘 안되어 처음엔 궁남지가 논에 둘러싸인 것으로 착각했다. 원추리도 여기저기 많이 심어져 있어 조만간 연꽃과 원추리가 함께 피어나면 참 예쁠거 같다. 애초의 궁남지는 지금보다 더 컷다하니 그때는 연꽃 연못들과 중앙 연못이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
궁남지 구경을 마치고 부여 시내를 벗어났다. 어제부터 지금까지는 힘을 아껴두었다. 이제부터 오늘의 목적지인 성당포구까지 힘차게 ! 나아가려니 ... 이미 엉덩이는 불이 붙었고, 손바닥은 아프고, 다리 근육은 태업 직전이다. 에휴... 살살 가자... 쌩쌩할때는 평지가 좋지만, 지쳤을 때는 오히려 오르막 내리막이 반갑다. 내리막에서는 당연히 엉덩이 떼고 중력의 힘으로 달리고, 오르막에서는 한 점 부끄럼없이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를 한다. 넓고 넓은 억새밭이 한동안 이어진다. 대체 이걸 뭐에 쓸라고 이리도 정성스레 수확해두었을까 ??
여튼 열심히 달리다보니 강경읍에 도착했다. 하하... 그러고보니 광역시-특별자치시-시-군-읍-마을의 순서로 여행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은 다시 시로 승격하지만. 강경은 포구라고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배가 보인다. 어이구 저 뒤에 산위로 올라간 배도 있다. ㅎㅎ... 강경젓갈전시관이란다.
강경읍 입구에 야트막하지만 범상찮은 바위산 하나가 솟아있어 올라가보았다. 옥녀봉 또는 강경산이라는데 정상 부근에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가 있다. 말하자면 종교 성지인 셈이다.
이 초가집은 현대에 복원된 것이다. 일제시대때 이 자리에 신사를 짓겠다고 교회를 핍박한 끝에 목사를 포함해서 6명을 죽이고 교회를 불질러 없애버렸다 한다.
옥녀봉구멍가게라니.. 귀여운 이름이다. 옥녀봉 정상에서 군산 방향으로 찍어봤다. 옥녀봉은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바위산이다.
이 사진은 내가 방금 지나온 부여 방향으로 찍은것이다.
옥녀봉 정상에는 봉수대가 하나 서 있는데.. 이거 역시 현대에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성당포구마을에 가까이왔음을 알려주는 바람개비길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제 다 왔구나 싶었는데 이 길이 의외로 길다. 대략 5키로는 이어진듯. 이걸 어찌 다 설치했을꼬...
마을 가까이 강변에는 갈대수피아와 용안생태습지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갈대수피아는 미로 놀이를 할 수 있는 갈대밭이다. 갈대밭이 끝도 없이 넓기도 하려니와 작년에 자란 갈대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 키가 서장훈님 보다도 훌쩍 커서 미로놀이 하러 둘어갔다 정말로 길을 잃을거 같다. 용안생태습지공원은 한갓지고 제대로된 화장실 시설도 있어 여차하면 노숙도 가능하겠다. 어제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성당포구금강체험관캠핑장은 원래 금, 토에만 운영한다해서 나는 혼자만 가는 것이고 여기를 이용하지 못하면 노숙을 해야 한다고 사정해야 했는데 이 공원이 Plan-B가 될 수 있었겠다.
캠핑장에 5:30쯤 도착했다. 오늘의 손님은 어차피 나 뿐이라 일반 데크 사용료 2만원을 받고는 천막 시설이 된 데크를 내준다.아싸 ~
마을의 성당치킨슈퍼에서 막걸리를 사려 하니 그 흔한 지평막걸리도 없고 듣도보도못한 막걸리 한 가지 밖에 없다. 이게 뭐야... 차라리 소주를 살까 잠시 망설이다 그냥 샀는데, 어랍쇼 ? 엄청 맛있다. 느린마을 막걸리를 처음으로 맛봤을 때의 느낌이다. 익산 명인양조원의 국산쌀생막걸리 고운님. 기억해둬야겠다.
오늘의 라면에는 머위와 왕고들빼기, 쑥이 들어갔다. 머위는 분명 임자있는 물건일텐데... 뚝방까지 올라온 잎 2개만 슬쩍 따왔다. 죄송합니다~ 나는 머위의 쓴 맛이 너무 좋다. 나에게 머위와 카레, 고량주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처음 먹었을때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고약한 음식으로 느껴졌지만 두 번째 이후부터는 너무 좋아하게 되었더라는.
이용객이 나 밖에 없으니 샤워실도 혼자 쓴다. 잠옷으로 갈아입으면서 낮에 입던 옷과 수건을 그냥 샤워실에 걸어두고 나왔다. 오늘밤은 불빛이 없으니 편히 자려나 ..... 했는데 깊은 밤중에 동네 개가 사생결단을 하고 짖는다. 멧돼지나 고라니라도 내려왔지 싶다. 이번 여행의 아침은 즉석죽으로 해결했는데, 별 맛도 없고 대용량으로 골라 샀음에도 포만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간편하게 아침 한 끼 떼우는데는 죽보다 컵밥이 낫다.
사흘째 아침. 일기예보가 '흐림'이라 어차피 텐트 일광욕은 못 하겠다 싶어 평소와 같이 일찍 일어나 움직였다. 살짝 결로가 맺혔지만 수건으로 닦아내고 7:20에 출발.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길은 산을 오른다. 이번 여행의 최대 난코스다. 몸이 쌩쌩하고 자전거가 가벼워도 끌바를 할 수 밖에 없는 길이다. 강변으로 길을 내기 어려워 그냥 원래 있던 산골마을길에 줄만 그어놨나보다. 뭐... 까짓. 끌바하면 된다.
웅포의 곰개나루를 지난다. 성당포구의 캠핑장은 아주 아담한 작은 캠핑장이지만 여기 캠핑장은 제법 규모가 크고 바로 앞에 수상레포츠 시설도 있다. 잠시 끌바를 하면서 구경하는데 여기가 진포대첩 전적지라는 안내글이 있다. 고려시대에 최무선 장군이 세계 해전사 최초로 화포를 활용해 5대 1이라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왜구를 크게 무찔러 500척의 왜선을 모조리 격파하고 왜구 1만 중에 3천을 척살했다하니 후대의 이순신 장군께서 이로부터 가르침을 받지 않으셨을까. 진포는 군산의 옛이름이고 여기서부터 군산은 대략 20키로 거리가 되니 큰 전투가 금강 하구 일대에서 넓게 벌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금강하구둑은 강과 바다를 구분한다. 구멍 숭숭뚫린 진흙 갯벌과 그 위에서 사냥감을 찾는 바닷새들과 희미한 바다 냄새가 여기로서 강이 끝났음을 말해준다.
자전거길의 관점에서 군산 초입에 경암동 철길마을이 있다. 1944년에 어떤 신문공장의 물자를 나르기 위에 만들어진 철길로서 2008년에 운행을 멈추었다 한다. 철길 양옆에 현재의 기준으로는 집이라 할 수 없는 판자집 류의 집들이 (일부는 새로 만든거 같기도 하고) 보전되어 있어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복고풍을 판매하는 점포가 되어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관광으로 군산근대화거리를 찾았다. 지금은 군산근대건축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조선은행 건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 관사
지금은 게스트하우스로 쓰이고 있는 여미랑. 왜놈들이 우리 민족을 수탈하여 쌓은 부로 이렇게 남의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단다.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개의 독채로 둘러쌓인 연못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신흥동 일본식가옥. 방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대신 창호문을 떼고 유리문을 달아 다다미방을 들여다볼수 있게 해놨다. 일본식 답게 정원 꾸밈이 아기자기하다.
진포해전부터 일본식가옥까지, 군산 일대에는 일본놈들이 지은 죄가 많이도 남아있다. 언제 갚으리... 그런 생각이 드니 문득 왜 '근대화'거리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근대화론'을 연상시킨다. 수탈의 거리나 식민지 거리로 부르는게 마땅하지 않은가 ? (이런 생각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느 선배가 '적산 거리'가 어떠냐 하신다. 그게 더 좋네...)
금강길은 성당포구 이후의 산길을 제외하면 어려운 오르막-내리막도 없고, 위험한 구간도 없고 노면 상태도 좋은 편이다. 남한강길, 북한강길 보다 한 등급 위다. 자전거나 산책객들로 붐비지도 않고, 양 옆으로 넉넉히 펼쳐진 한가한 풍광이 평안한 라이딩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한강변에 살면서, '이렇게 자전거타기 좋은 환경을 두고 내가 대체 어디 가서 살 수 있을까...' 했는데, 대전이나 세종시 정도라면 지금 사는 동네 못지 않게 자전거를 즐길 수 있을 거 같다. 은퇴 후 주거지로... 검토하겠음.
시외터미널 옆 아무 식당에서 제육덮밥을 사먹고 12:30 출발하는 동서울행 시외버스로 상경했다. 바로 옆에 서울 가는 차편이 더 많은 고속버스터미널도 있었지만 2박3일 먼지를 뒤집어쓰고 면도도 안한 몰골로 센터럴시티에 내렸다간 snobbish한 강남 사람들이 거지 왔다고 돌을 던질까봐 굳이 시외버스를 택했는데 시외버스는 익산을 들러가야해서 고속버스보다 1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사실을 버스가 익산 정류소에 정차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쩐지.. 승객이 나 하나 뿐이더라 ... 흑. 사전조사 미흡.
첫날 대전 둔산의 정부청사를 둘러싼 숲에 이팝나무꽃이 만발하길래 역시 따뜻한 남쪽이구먼 했었는데 이틀 후 돌아온 서울에도 이팝나무꽃이 한창이다. 이틀 사이에 만개한 것인가.. 출발의 설레임으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