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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안면도

재준아범 2023. 4. 7. 06:39

올해는 입사 30주년, 내년은 결혼 30주년, 내후년은 정년퇴직. 회사가 제공하는 기회를 다 누리고 가리라~ 봄꽃이 한창일 시기를 겨냥해서 4.4~4.6 일정으로 휴양소를 신청했다. 안면도 아일랜드리솜 당첨. 그런데 여행일이 다가오니 일기예보가 봄꽃 여행 아닌 봄비 여행을 말해준다. 흑. 그래도 워낙 봄가뭄이 심해 여기저기 하루에도 수십 건씩 산불이 발생할 지경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원래 3일 휴가를 받으려 했으나 전력파트 교대근무가 워낙 빡빡하여 출발 전날 야근을 섰다. 심지어 새벽 3시쯤에 상황이 발생해서 잠을 설치고 아침에 긴급 회의까지 참석하고는 좀 늦게 출발했다. 또 흑. 
여튼 즐거운 출발, 첫날 점심은 장어로 기력 보충하기로 하고 서해대교 건너 당진에 있는 먹쇠민물장어집에 도착. 어머나.. 화요일은 휴무일이란다. 또 한번 흑. 이번 여행의 식당 계획을 책임진 이전무의 유일한 실책이다. 급하게 대안을 모색, 이전무가 예전 철강회사 다니며 공장 방문할때 종종 갔다던 한진포구 백반집으로 향했다. 집 이름도 평범하고 식단도 평범한 그냥 밥집인데, 닭껍질만두라는 요상한 메뉴가 하나 있다. 말 그대로 닭껍질을 밀가루 만두피 대신 사용한 만두인데, 이거 두 조각씩 먹고 나니 속이 니끼하다. 커피가 땡긴다. 또 한번 급히 카페를 검색하여 근처에 카페몰로라는 바닷가 카페를 찾았다. 3층 테라스에 앉으니 바다전망 보다는 자랑스런 제조강국 대한민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약커피라는게 대표메뉴라 해서 마셨는데, 마약맛이 전혀 안난다.. 싶더니 마약이 컵 바닥에 다 가라앉아있다. 마지막 한 모금으로 달디단 마약을 흡입했다.
비가 4일 저녁부터 6일 아침까지 내린다하여 원래 5일 안면도에서 하기로 한 ATV 체험을 첫날 왜목마을에서 하기로 한다. 왜목마을로 가는 길 좌우로는 온통 공장들이다. 예전에 업무차 당진을 자주 왔던 이전무가 여행 가이드를 한다. 남들은 현대제철 등의 거대한 규모에 감탄하고 있는데 나는 주로 일반 주택가 전봇대 만큼이나 빽빽이 서 있는 거대 송전탑들에 눈이 간다. 온갖가지 형태의 대형 송전탑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
점심식사 전에 ATV 체험 예약을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이게 워낙 주말 장사라 사장님은 전남 어딘가에 있는 집에 가버리셨다는 거다. 또 흑 ? 우리를 위해 두시간 반 거리를 돌아와 출근하셨다. 감사합니다. 안면도에서의 ATV 체험 코스는 바닷가 모래사장 등 거의 평지길라는데, 여긴 코스의 대부분이 험한 산길이다. '체험'이라기보다는 '훈련'이다. 사장님은 그런 일 없다고 강하게 주장하시지만, 아무래도 한 달에 한 명 정도는 비탈길로 굴러 떨어지지 싶다. 바닷가 산 정상에 올라 기념사진 한 장. 

난 그 와중에도 속도감을 살짝살짝 즐기고 싶어서 앞에 가는 이기사와의 간격이 충분히 벌어질때까지 기다렸다가 달리곤 했는데. 뒤에 오는 유원장이 자꾸 재촉해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에잇 귀찮은 녀석. 대신 이기사의 ATV가 날려주는 흙먼지만 듬뿍 섭취했다. 체험을 끝내고 나니 옷이 온통 흙먼지다. 
저녁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 고남저수지 옆을 지나는데 벚꽃이 장관이다. 잠깐 내려 꽃 구경을 한다. 저수지 둘레길에 벚꽃과 수선화를 잘 심어놓았다. 서울은 이미 벚꽃이 끝물이라 그보다 남쪽에서는 아예 다 끝났겠거니 했는데, 이쪽의 벚꽃이 오히려 한참이다. 대도시 서울을 둘러싼 열섬이 꽃들을 재촉했나보다. 

비 예보로 일정이 바뀌어 따로 꽃 구경할 시간이 없어 섭섭했는데, 이걸로 대충 떼웠다, 근데... 충남과 수선화는 무슨 인연이 있길래 당진-태안-서산 모두 이렇게 수선화를 많이도 심어놓았을까 ?
꽃 구경을 마치고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첫날 저녁 메뉴는 원풍식당 박속밀국낙지탕. 시원한 박속 국물에 큼지막한 1인 1 산낙지가 들어간다. 맛있다. 낙지를 다 건져먹고 수제비 칼국수까지 푸짐하게 먹었다. 마지막은 먹물통까지 잘 익힌 낙지머리로 마무리를 했다. 역시 어디 갈 때는 이전무의 깃발을 따라가야 한다. 
안면도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야참 및 아침거리를 장만했다. 세 가지 종류의 막걸리 4통, 빵, 구운계란, 커피, 바나나우유, 바나나, 귤. 나중에 아일랜드리솜 안에 있는 마트에도 들러 컵라면까지. 숙소에 도착해서는 짐 내려놓고 리조트 내부 구경 한바퀴 하고 들어와서 수다 떨다가 12시를 좀 넘겨 잤다.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여전히 잘 내리고있다. 우산 쓰고 바깥 구경 좀 하다가 폭우를 뚫고 점심먹을 식당으로 간다. 안면도에서 서산으로 가는 길에 길~고 긴 보령해저터널을 통과한다. 해저터널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길고 세계에서도 5번째로 길다는데, 막상 들어가면 그냥 터널이라 .. 우리가 지금 바다 밑에 있는지 산 밑에 있는지 알 도리가 없다. 
점심 메뉴는 서산회관 주꾸미 샤브샤브. 원풍식당도 그랬고 여기도 그렇고 먼~길 달려온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얼마전에 서울 옥수해천탕집에서 문어를 시작으로 낙지, 주꾸미까지 두족류 3종을 산 채로 끓는 물에 처형해버렸다. 많이 좀 미안하다. 
만족스런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원산도 해변 언덕위에 자리잡은 카페 바이더오를 찾았다. 원산도에는 제법 분위기 좋은 카페가 여럿 있는거 같은데, 그 중 여기가 제일 좋은거 같다. 실내도 분위기있고 정원도 잘 꾸며놓았다. 정원 꾸미는데 돈 많이 썻을거 같다. 카페 옥상에 뜬금없이 만들어놓은 그네에서 사진 한장씩 찍었다.

아일랜드리솜이 자랑하는 물놀이장 오아식스에 입장.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뜨끈한 노천탕에 몸을 담근다. 인피니티풀을 비롯해서 노천탕이 여러개라 여기저기 옮겨다니는 재미도 있다.

오아식스를 나와 오락실에서 잠깐 놀다가 횟집에서 보내준 승합차를 타고 방포항에 있는 대양횟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이번 여행의 주 만찬이다. 입사 30주년 돌파 기념으로 내가 한 턱 냈다. 친구들 응원과 축하의 기운으로 정년퇴직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기를. 그나저나 이 집 세트 메뉴는 양이 많아도 너무 많다 (가격을 생각한다면 아주 많은건 아닌데...) 30주년 기념으로 배가 터질 뻔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오늘도 12시 전에 자면 안된다는, 일찍 자면 어디에 치약을 발라버리겠다는 (이게 뭐 고등학교 수학여행이냐 !!!) 유원장의 협박을 뒤로하고 걍 일찍 잤다. 전전날 야근하다 터진 상황으로, 여행 중에 하루 두 번씩의 음주로 지쳤다. 푹 자야한다...... 
 
여행 마지막날, 비는 대충 그쳤으나 안개가 자욱하다. 결국 여행 내내 서해바다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오션뷰 9층 숙소를 얻었건만.. 흐흐흑. 
오늘의 코스인 예당저수지를 가는 길에 거북이마을을 들를 수 있어 잠깐 들렀다. 원래 첫날 오후에 가볼 계획이었으나 비 예보로 포기한 일정이었다. 벚꽃도 수선화도 비에 젖어서 풀이 죽어있다. 날이 좋았다면 벚꽃과 수선화로 장식된 진입로가 참 예뻣을거 같다. 
저수지 서쪽변에 위치한 예당순두부에서 해물순두부로 점심을 먹고 출렁다리와 모노레일을 찾았다. 예당저수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저수지라 하고 .. 출렁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출렁다리란다. 근데 평일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출렁거리는 느낌이 없다.

예당호 모노레일은... 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타는 모노레일일까 ?? 모노레일 속도는 느리지만 오르락내리락 경사도가 꽤 있어 나름 재미가 약간은 있다. 앉는 자리마다 온열 장치가 되어 있어 엉덩이가 따뜻하다. 그래서인지 이전무님은 모노레일 소음이 만만챦은데도 잘도 주무신다.


이제 여행 끝.
유원장 아파트에 주차하고는 간만에 육지고기가 먹고 싶어 근처 재수돈감자탕에서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