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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기념 방콕 플렉스...

재준아범 2025. 3. 30. 16:49

1일차.
  환갑을 맞아, 내 개인적으로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몇 년 전부터 떠들던 해외여행을 나섰다. 우리 여행단이 함께 비행기를 타는 것도 처음이다. 다만.. 낙오자가 1명 있으니, 이기사가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빠졌다. 그놈의 중요한 시험은 해마다 2월부터 11월까지 쉬지도 않고 계속되어 왔고, 대한민국 모든 자격증을 몽땅 다 따내고야 말겠다는 이해못할 의지에 불타는 이기사의 도전정신에는 정년퇴직도 없다.
  이기사를 제외한 3인만의 임시 단톡방을 개설하고, 수시로 여행 계획을 논의하다 못해 무려 3번의 (모임의 내용은 대략 평소 우리들 술자리와 큰 차이는 없는.. 그니까 결국은 별 내용 없는) 오프라인 미팅을 거친 끝에 모든 일정 계획과 항공권 예약 발급에 마사지, 식당 예약 등등의 모든 사전 준비를 해외출장 전문가이며 방콕에 거점까지 보유한 이사장에게 일임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여행중의 지출도 이사장이 다 해주기로 했다. 우후후~ 편하다~~
  우리에게 차고 넘치는건 시간이므로, 비행기삯을 아끼기 위해 월요일 출발~토요일 귀국으로 일정을 잡았다. 3월 24일 오전9시35분 출발 ! 이 시간이면 굳이 아침잠 설치지 않아도 되겠다고 좋아했는데.. 이사장이 6시반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고 도심공항타워에서 5시10분 버스를 타야한다고, 그럴라면 버얼써부터 예약을 해놓고 4시50분까지는 도심공항타워로 와야 한다고  나를 들들 볶는다. 한번 볶기 시작하면 기어이 끝을 보는 이사장을 도저히 당할 수 없다. 여차하면 새벽에 우리집 초인종을 누를 기세다. 게기고 반항하고 애원하다 결국 졌다. 
  드디어 출발일. 도심공항타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사는 나는 4시49분에 택시에 올라탔고, 정확히 1분 후에 이사장의 모닝콜을 받았다. 독사같은 놈… 공항에 6시10분 도착. 30분 후에 유원장이 도착할때까지 멍때리며 기다렸다.. 졸졸졸 물 흘러가듯 체크인, 출국수속 다 마치고서는 면세품 인도장에서 이사장이 온라인으로 주문해둔 면세품 받는거 구경하고, 이사장 비즈니스라운지 입장하는거 구경하고 나서는 할 일이 없다. 멍~~~~~
  부지런한 이사장이 모두의 자리를 복도 옆 좌석으로 예약해서 나와 유원장 사이에 한 자리가 있다. 자알 하면 옆자리 비어 가겠다... 했는데 아마도 태국인 아마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아가씨가 우리 사이에 앉았다. 대한민국 개저씨 사이에 끼어앉아 6시간을 버텨야 하는 이 불운한 처자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리에 앉자 마자 수면모자를 눌러쓰고 비행 내내 미동도 않는다. 기내식도 거르고, 심지어 물도 한방울 안마시며 단식투쟁이다. 지은 죄 없이 미안해진다.
  제시간에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 예약해둔 승용차를 타고 편하게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사업 상 방콕 왕래가 잦은 이사장의 사촌동생이 소유한 콘도다. 침실이 두 개, 욕실도 두 개, 거실에 간단한 부엌과 세탁기 까지 갖췄다. 이번에도 코골이 등 잠버릇 고약한 나와 이사장이 한 방을 써야 한다. 이 콘도는 안면 인식 시스템으로 출입을 통제하는데, 이사장 얼굴만 등록했다. 즉.. 이사장이 없으면 나와 유원장은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며칠 동안 이사장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한다.
  짐을 풀고 나와, 걸어서 꽝시푸드라는 해산물 식당에 갔다. 꽝시 푸드인줄 알았는데 KUANG SeaFood다. 언젠가 우리나라 테레비에 나왔다고 한다. 맛도 좋~고 양도 푸짐하다. 보통 방콕의 1인분은 내 기준으로는 1/2인분인데, 여기는 한국 사람 기준으로 양을 잡은거 같다. 요리 다섯개에 큰 병맥주 세 병, 콜라 한 병을 8만원 정도에 먹었다. 알뜰한 이사장이 신한카드 프로모션을 챙겨 푸팟봉커리를 무료로 제공받은 덕이 크다. 이후에도 여러저기서 온갖 할인을 다 챙겼다.   

  식사 후의 일정은 루프탑바. 지하철타고, 지상철 타고 Thong Lo 역에서 내려 T-ONE 빌딩을 찾았다. 방콕에는 지하철인 MRT와 지상철인 BTS가 분리 운영된다. 둘 사이에는 환승 개념이 없어 요금을 따로 지불해야 한다. MRT 이용을 위해 토스뱅크 체크카드를 준비해갔다. 체크카드든 신용카드든 카드 뒷면에 와이파이 표시 비슷한 (NFC) 그림이 있으면 이용 가능하다. BTS는 공항에서 래빗카드를 구매했다. 물론, 이사장이 다 알아서 해줬다. 200 바트에 사면 100바트는 보증금, 100바트가 기본 충전이다. 서로 환승만 안되는게 아니다. 같은 장소에 위치한 역인데도 이름이 서로 다르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가 자주 이용한 역이 지상에서는 Asok이고 지하에서는 Sukhumvit 이다.
  T-ONE 빌딩 꼭대기 루프탑바 Tichuca는 조명도 휘황하고 DJ도 있는 것이 여차하면 댄스타임이라도 벌어질듯한 분위기다. 이렇게 훌륭하고 물 좋은 장소에 개저씨들이 민폐를 끼치러 오다니... 루프탑바 위로도 몇 층을 올라갈 수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가 사진 한 장 찍어봤다.

방콕은 저층의 집과 건물들 사이에 고층의 타워들이 그냥 여기저기 삐쭉빼쭉 서 있다. 도시계획이나 일조권 같은 개념은 없는 거 같다. 하긴.. 더운 나라에서 옆에 높은 빌딩이 해를 가려주면 오히려 고마운건가 ? 덩치 큰 빌딩에는 예외없이 야외 수영장이 하나씩 보인다. 혹시...법으로 정해진건가 ?
  이번 여행의 첫 번째 규칙은 1일 1마사지. 오늘은 숙소 근처에서 이사장이 발굴했다는 마사지샵을 갔다. 이런 장소에 관광객이 함부로 돌아다녀도 될까... 싶은 으슥한 뒷골목에 있다. 살짝 겁이 난다. 발마사지 받다가 발과 몸이 분리되는 흉한 일을 당하진 않을까.. ? 나와 이사장은 발마사지를, 오십견인지 직업병인지 어깨가 아프다는 유원장은 아로마 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발마사지는 처음인데, 남한테 발을 맡긴다는게.. 타이마사지 받는거 보다 더 어색하다. 더구나 내 발은... 무좀에.. 각질에.. 무지외반증에.. 심지어 정강이에는 며칠 전에 생긴 상처까지.. 에구구 창피하다.
 
2일차.
   일정이 꽉 찬 날이다. 9시에 아침을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우리 여행단 기준에서는 정말 이른 아침이다. Phrom Pong 역에서 내려 작년까지 7연속으로 미슐랭 빕그루망에 이름을 올리고 스트리트푸드파이터에도 나왔다는 Rung Rueang Pork Tung Noodle 이라는 식당에서 쌀국수를 먹었다. 양과 고명을 선택할 수 있는데, 라지를 시켰어도 우리나라 1인분에 못미치는 정도다. 대신 고명으로 나온 돼지 (간, 곱창, 또.. 뭔가) 특수부위를 유원장 몫까지 먹어줬다. 유원장은 고수도 싫어하고, 이렇게 음식을 좀 가리더니.. 결국은 4일차에 탈이 났다. 음식값은 셋이서 12,000원 정도 나왔다. 개방된 음식점이라 아침인데도 무지 덥다.

  왕국에 왔으니 왕궁을 봐야지. 왕궁 가려고 이 더위에 긴 바지를 입고 나왔다. 왕궁 매표소에 가까운 Sanam chai 역에 내려서.. 그냥 걷자니 덥다. 이사장이 그랩과 볼트를 번갈아 뒤지고 있는데 유원장이 덜컥 툭툭이를 잡아 흥정을 한다. 약간의 바가지를 감내하고도 한 번 타보고 싶단다. 그거까지는 좋은데, 이것이 왕궁 입구에서 좀 멀리! 떨어진 길에다 우리를 내린다. 뭐.. 할 수 없다. 에이 덥다. 그래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나는 주로 찍혔다. 나도 가끔은 찍어주려 했으나.. 찍을 때마다 바닥을 많이 찍었네.. 하늘을 많이 찍었네.. 유원장이 갈군다. 

  이번에는 볼트로 승용차를 불러 자칭 차이나타운에서 가장 맛있는 딤섬 집이라는 Laoteng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갔다. 이번 여행에서 드물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식당이란다. 북경오리 프로모션이라고 41,000원에 제공한다. 저렴하다고 좋아했더니 나중에 계산해보니 VAT가 붙는다. 북경오리 한마리와 딤섬 세 가지를 주문했다. 오리가 아니라 거위가 나온것인가.. 어마어마하게 큰 놈이 나왔다. 껍질을 싸먹는 밀쌈은 한 장씩 집어들기가 쉽지 않다. 유원장이 내가 한번에 밀쌈 두 장을 집었다고 핀잔을 주더니 자기는 밀쌈 넉 장을 한번에 집어든다. 유원장은 순용이 갈구기를 이번 여행의 주 테마로 선정한거 같다. 껍질을 벗긴 나머지 살코기는 손님이 선택한 소스로 볶아서 다시 내어준다. 절반은 먹고 절반은 그릇에 포장해서 다음날 아침에 먹었다. 
  점심을 마치고 걸어서 딸랏너이라는 벽화 골목을 찾아 어제 밤의 마사지샵 골목보다 더 으슥한 뒷골목을 뒤지고 다녔으나 벽화 쪼가리만 여기저기 약간씩 찾을 수 있었다. 씰데없이 관광객만 꼬인다고 다 지워버렸나 ? 생각하고 포기했는데, 나중에 카페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우리가 가던 방향으로 조금만 더 갔으면 찾을 뻔했다. 벽화 골목 찾기를 실패하고 홍씨앙꽁이라는 강변 카페를 갔다. 우리나라 사람에게만 유명한지 ? 구글 지도에서 영어이름이 없다. 더워서 야외자리는 엄두를 못 내고 실내에서 찬 과일음료를 마셨다. 어지간하면 찬 음료는 피하는 나도 이 더위는 어쩔 도리가 없다. 카페 실내가 제법 분위기 있다. 홍콩 느와르 촬영하면 분위기 좀 살겠다. 이 분위기를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자 한국인의 미모를 지녔으되 탈한국적인 복색의 옆자리 처자들에게 부탁하니.. 한국인이네 ? 신경써서 주변을 살펴보니 대략 ⅓ 정도는 한국 사람이다. 

 
  찬 음료로 땀을 말리고 아이콘 시암으로 건너갈 셔틀보트를 타기 위해 Si Phraya pier로 향했다. 가는 길에 벽화 골목 찾기에 성공하여 사진 한 장.

아이콘시암으로 건너가는 셔틀보트는 1인당 겨우 300원이다. 쇼핑몰 매출을 위해 제법 비싸보이는 보트를 거의 공짜로 태워준다. 보트는 비싸보이지만 겨우 강 좌우만 완전 저속으로 왔다갔다하는 신세라, 그 보트에게 영혼이 있다면 스스로의 신세에 자괴감이 들 듯 하다. 아이콘시암은 화려한 명품샵에서부터 길거리 스타일의 먹거리 노점까지 없는게 없는.. 잠실 롯데월드 같은 곳이다. 쇼핑몰 많기로 (정말 많다!) 유명한 방콕에서도 제일 유명한 쇼핑몰이라 한다. 이렇게 유명한 곳에 왔으니 어떤 흔적이라도 남기고 가야겠어서 스무디 한 잔씩 했다. 이사장 조공품으로 망고젤리를 구입했다. 망고젤리는 아무데서나 구할 수 있지만, 정확히 육면체 모양의 젤리는 여기 말고는 판매하는 곳이 거의 없다. 
  아이콘시암 앞 부두에서 메리디안크루즈를 탔다. 디너크루즈다. 괜찮은 품질의 뷔페를 생음악과 함께 제공한다. 밴드는 없지만 목소리는 생음악이다. 알뜰한 이사장이 출국전에 할인 예약하여 1인당 26,000원 정도에 즐길 수 있었다.

짜오프라야 강에는 여기저기 디너크루즈가 많이 다니고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이만하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북쪽으로 왕랑 부두쯤 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아시아티크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아이콘시암에 내려준다. 막판에는 흥겨운 춤판도 벌어진다. 어떤 배에서는 기차놀이가 벌어졌다. 저기는 틀림없이 우리나라 사람이 많이 탓을꺼야.. 다만 아쉬운것은, 6시반에 끝나는 일정이라 왓아룬 등의 야경을 즐길 수 없었다는 것. 우리 다음 시간대를 예약했으면 좋았을것을...
  크루즈를 마치고, 이사장이 Urban Revivo 라는 브랜드를 봐야한다고 해서 다시 아이콘시암으로 들어갔다. 중국브랜드라는데.. 나야 뭐 품질은 모르겠고 가격은 명품이다. 중국 마~이 컷다..
  오늘의 야간 일정은 카오산로드. 백패커들이 저렴한 숙소를 찾아 몰려들면서 커진 거리란다. 온갖 길거리음식, 맥주, 생음악, 마사지, 문신, 악어바베큐, 터키아이스크림, 심지어 대마초,.. 아주 난리 부르스다. 근데 이 골목이 진짜가 아니란다. 카오산로드의 진짜 중심 골목으로 가니 여긴 아주 대환장파티다. 길 전체가 클럽이다. 이걸 어째.. 이걸 어째.. 이 분위기에 휩싸여 맥주 한 잔 할까 하다 슬쩍 허기가 지길래 배도 채울겸 아저씨답게 망고를 사먹었다. 찰밥 위에 망고 조각을 올리고는 연유와 땅콩가루를 뿌린다. Mango Sticky Rice란다. 맛있다. 다니다보니 여기저기서 이걸 판다. 이거 하나를 셋이 나눠 먹으니.. 좀 부족하다. 이번에는 순수 망고로 1인 1컵을 했다. 아... 배부르다. 지나치게.. 그리고 살짝 느끼하다. 지난번 가족여행때는 즉석에서 썰어주는 망고를 먹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노점은 찾을 수 없었고, 다들 컵에 넣어놓은 것을 판다. 신선함 부족. 정신없는 거리를 다니다보니.. 정신이 나가서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 
  카오산로드 구역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마사지삽에서 유원장은 어제처럼 아로마마사지, 이사장은 발마사지, 나는 타이마사지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마사지 보다는 명승지 관광 위주로 돌아다니던 가족여행때는 마사지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1일 1마사지 여행을 하니 눈 돌리는 곳마다 마사지샵이다. 대마초 가게도 은근히 많다. 일곱 갈래로 갈라진 삐쭉한 이파리 모양이 대마초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게 되니, 곳곳에서 눈에 들어온다.
  이틀 연속 강행군을 했다. 국내여행에서는 이것의 ⅓ 정도 일정에도 헉헉대던 이사장이 해외에 나오니 날아다닌다. 역시 무역 분야에서 오랜동안 일해온 글로벌 체질의 사나이다.
 
3일차.
  이틀 연속 강행군을 했으니, 오늘은 좀 쉬는 날이다. 느긋하게 숙소 수영장에서 몸 좀 풀고나서 어제 저녁 편의점에서 사온 간편식과 중국집에서 싸온 오리고기로 아침을 먹었다. 

  여행 며칠전에 서버실 어딘가에서 회사 신분증을 잃어버리고, 이중마루 홀에 다리가 빠져 부상을 당하고, 지하철에서 백팩을 두고 내리기까지하는 (이거 무지무지무지 비싼 가방이다) 심란한 사건이 연달아 있어 많이 찜찜했는데, 옆 팀 직원이 신분증을 주워 전달해줬다는 소식과, 백팩이 지하철유실물센터에서 확인되었다는 낭보까지 받았다. 아싸~~ 이제는 좋은 일만 생길거야~~
  룸피니 공원을 갔다. 그냥.. 점심먹을 식당 근처라.. 겸사겸사. 가족여행 때에는 여러 덩치들이 모여서 일광욕하고 있던 룸피니 공원 도마뱀들이 그동안 내란이라도 치렀는지 몇 마리 보이지도 않고, 덩치도 작아지고, 각자 한마리씩 띠엄띠엄 나타난다. 점심 식당으로 나가는 공원 출구를 찾다가 우리 사이에도 내란이 발생했다. 이리로 나가야 한다.. 저쪽에는 출구가 없다.. 이 더위에 너때메 이게 뭔 고생이냐... 좋은 소식은 소식일 뿐, 행운의 징조가 아니다.
  헤매다 헤매다 겨우 제대로 된 출구를 찾아 North East 식당에 도착했다. 얼핏 보기에 패스트푸드 체인점 느낌이 나는 이 식당은 가격이 다소 비싼만큼 양이 푸짐하다. 한국인에게 안성맞춤. 그래서 한국인에게 인기. 그래서 여기서도 신한카드 프로모션 진행중~ 푸팟봉커리가 맛있는 집이란다. 나는 뭐 원래 다 맛있다. 오늘도 더우니까 찬 음료. 땡모반이란 수박음료를 시켰다. 어제 아이콘시암에서 유원장과 이기사가 먹던 거다. 그냥 스무디인줄 알았는데.. 뭔가 다르다. 스무디보다 걸쭉하고 진하게 맛있다. 어찌어찌하다 이후로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해 아쉽다. 쩝쩝.

  점심 후에 Emsphere 쇼핑몰을 구경했다. 이번 여행의 두 번째 규칙은 as many 쇼핑몰 as possible 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도록 쇼핑몰 구경을 하고나서 저녁을 먹으러갔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잘 먹어야 한다. 특히 단백질. 84층 바이욕스카이호텔의 81층 뷔페를 갔다. 이 호텔은 높은 층 몇 개가 다 식당이다. 우리가 찾은 뷔페는 손님이 그냥 막 접시에 음식물을 담아가는 방식이 아니고, 코너마다 제시된 세트 중에 하나를 요청하면 세트를 만들어주는 식이다. 예를 들어 회 코너에서 나는 문어+연어+참치+또뭔가 조합의 회세트를 주문했다. 스테이크와 같이 조리에 시간이 좀 소요되는 코너에서는 손님 자리로 직접 가져다주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꼭대기 전망대로 올라가서 야경을 감상했다. 전망대 자체가 계속 회전하기 때문에 한 자리에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360도 조망이 가능하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제법 되는 거리를 걸어서 CentralwOrld 쇼핑몰까지 걸어갔다. 근데 ? 이사장이 쇼핑몰 구경을 하는 듯 하더니 또다른 쇼핑몰로 넘어가자고 한다. 쇼핑몰 구경도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른가보다. 나는 쇼핑몰 구경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일단 가면 뭐가 있나.. 살피면서 다니는 편인데, 이사장은 쇼핑몰 그 자체를 즐기는가 보다. 쇼핑몰에서 걷는 속도가 길에서 걷는 속도와 다르지 않다. 여튼 꽤 먼 거리를 걸어왔는데 또 다른 쇼핑몰로 걸어가자니 반항심이 생긴다. 2차 내란 발생. 2대1의 숫적 열세로 이사장이 뜻을 꺾긴 했으나 이때부터 폭풍전야의 저기압 상태가 되었다... 출발 전부터 합의된 일정표대로 하자는 것을 반대했으니 나랑 유원장에게 원죄가 있긴 하다... 쩝… 그치만 피곤한건 어쩔 수 없다. CentralwOrld 건너편에 있는 BigC 마트에서 각자의 조공품을 구매하고는 냉랭한 분위기에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이사장이 첫날 갔던 샵에서 마사지를 받고 가잔다. 그럴라면 전철 내려서 한참을 또 걸어야 하고.. 이사장만 가라하고 나는 숙소로 들어가겠다 하려니.. 이사장 얼굴이 없으면 숙소 출입이 안된다... 캑. 역시 인도하는자에게 함부로 게기면 안된다. 
좀 쉬어가는 날로 시작했는데.. 만보기는 어제의 기록을 넘어섰다.
 
4일차.
  오늘은 여행사 따라 아유타야 관광 가는 날. 관광 출발은 오후~~ 오전 일정이 딱히 없어요~~~ .. 8시 전에 일어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유원장 협박이 무서워 8시가 될 때 까지 자는척 누워 버텼다. 간밤에 침대에 누운 시간이 한국의 시간대로 보면 깊은 잠 다 자고 비몽사몽 이리뒹굴 저리뒹굴할 시간이라 거의 잠을 설쳤다. 근데 왜 얘들은 잠도 제대로 못 잤다는 나를 갈굴까.. 대체 내가 언제 코를 골았다는 것인가… 
  빵이랑 계란후라이랑 요구르트 비슷한 음료 먹고 수영 좀 하며 느긋한 아침을 보냈다. 유원장은 난데없이 설사가 났단다. 다들 같은거 먹었는데.. 뭔가 태국과 맞지 않는가보다. 이후로 유원장은 귀국할때 까지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괜찮다. 유원장의 몸은 잃어버려도 괜찮은 요소가 많~은 편이다.
  11시쯤 나와서 Phrom Phong 역 옆에 있는 EM Quartier 쇼핑몰 지하에서 나는 커리 국물 국수를, 이사장은 닭고기+밥을 먹었고 유원장은 옆에서 침만 꼴깍꼴깍 삼켰다. 이사장이 먹는 것이 하이난식 치킨라이스라고 유명한 음식이라는데, 보기엔 그냥 맨 밥에 양념도 없는 하얀 닭살에 오이조각 몇 개 뿐이라 이게 어찌 이사장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 후식으로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는 kaya 토스트를 먹으며 유원장의 침샘은 더욱 흘러넘치고 이사장의 저기압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 역시 기분전환에는 당이 필요하다. 좋은 기분으로 지하 마트에서 유원장은 조공용 과자를, 나는 아들놈 취향일듯한 똠양꿈 라면을 샀다 (근데.. 집에 갖고가니 별로 안 반긴다)
  아유타야 여행 버스가 출발하는 Asok역으로 이동해서 Terminal21 쇼핑몰의 after you라는 빙수가게에서 망고빙수 먹으며 남는 시간을 떼웠다. Mango Sticky Rice 의 빙수형이다. 흔한 빙수처럼 얼음을 잘게 갈고 빙수즙을 뿌린게 아니고... 뭐랄까.. 망고 커스타드? (여튼, 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는다) 를 차갑게 만들어 먹는 느낌에 가깝다. 거기에 찹쌀밥이랑 망고 조각들이 좀 묻혀있고 연유와 망고즙을 부어가며 먹는다.

 
  아유타야 관광은 12인승쯤 되는 승합차를 타고 우리까지 3팀 9명 출발했다. 한국인 전용투어인데 가이드는 우리말을 (독학해서!) 잘하는 태국인이다. 여행 시작의 브리핑을 마치고 질문 없냐고 하니 어떤 여사님께서 땡모반 어디서 사먹을 수 있냐고 묻는다. 코끼리 트래킹은 옵션투어인데 안해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얘기하니 왠지 더 해보고 싶었는데, 코끼리 농장에서 트래킹 하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묻는 말을 듣지 못해서 기회를 날렸다.

어른 코끼리는 이렇게 농장 안에 있게 하고, 아기 코끼리 한 마리만 관광객 구역에 두어 유료로 코끼리를 껴안은?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두 개의 사원은 유료 입장하고 한 개 사원은 마지막에 밖에서 사진만 찍었다. 아유타야는 대략 1300년대~1700년대 동안 왕조의 수도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본의 교토, 한국의 경주인 셈인데 당시에 미얀마와의 전쟁도 잦았고(주로 아유타야 왕국이 졌단다), 어떤 사원은 홍수 피해가 심해서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지만, 방콕 중심부의 화려한 사원들과 대비해 또다른 맛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란다.

 

이사장의 이 합장은 진심인듯 하다.

 
  간단한 도시락을 먹으며 선셋보트유람도 했다. 보트에서 일몰과 함께 본 사원이 마지막에 밖에서 사진만 찍은 그 사원인듯 하다.

 
  저녁 8시 쯤에 Asok 역으로 돌아와 역 근처 마사지샵에서 1일1마사지의 규칙을 이행했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상태 안 좋은 유원장만 숙소에 버려놓고 나와 이사장 둘이서만 야시장 JODD FAIR로 밤마실을 나왔다. 방콕은 야시장 마저도 화려하고 다양하다. 그냥 푸드트럭이나 노점 십여개 늘어선 우리나라 야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먹거리도 길거리 음식 뿐 아니라 일반 식당에서나 볼 수 있으려니 하는 것들까지 각양각색 다 있다. 근데 땡모반은 없다. 흑.
  시내 곳곳의 의리의리한 쇼핑몰도 그렇고.. 태국은 어찌 이렇게도 화려할까. 세계적으로 해외 관광객이 가장 많다는 도시답다. 볶음국수에 음료 한 잔 하고 돌아왔다. 또 사진을 안찍었네...

 
5일차.
  간밤엔 정말 잘 잤다. 여행의 피로와 어제 그제 모자란 잠을 한 번에 해소했다. 이제는 좀 익숙해진 Asok 역에서 멀지않은 Sai Nam Phueng 이라는 식당에 갔다. 여기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명한 식당이라고 음식 사진마다 한글이 붙어있다. 태국 음식점답게 양이 귀엽고, 음식값도 귀엽다. 그래도 아침식사로는 충분하다. 간단하게 쌀국수와 생선껍질 튀김을 막었다. 유원장은 이번에도 침만 삼켰다. 좀 불쌍하긴 하지만.. 갈수록 나를 갈굼으로써 배고픈 신경질을 해소하는 거 같아서 밉다. 
  방콕 여행의 마무리는 고급 마사지. MAKKHA라는 정말로 고오급진 마사지샵을 왔다. 그것도 무려 아로마 마사지를 90분이나 받으러 왔다. 방콕플렉스입니다~ 고오오급진 마사지샵은 시작하기 전부터 남다르다. 차와 과자를 먹으며 이름, 국적, 숙소, 보유 질환, 원하는 마사지 강도 등등을 작성해야 한다. 여기는 룸이 1,2인실 뿐인지 ? 나와 이사장은 2인실에 유원장은 1인실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안대' 비슷한 소리를 하며 비닐 포장된 뭔가를 건네주는데 안대 같았다. 이걸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하니 다시 똑바로 말해준다. '언더웨어'. 아.. 팬티구나. 다 벗고 요거만 입으라는 거구나..  어머나.. 근데 팬티가 왜 이러냐.. 브라질 아가씨 비키니 조각 보다도 작은데 심지어 성긴 망사다. 내용물?이 다 보인다. 망측해라.. 망측해라.. 다행히 몸 전체를 타월로 가리고 왼다리, 오른다리, 마사지하는 부위만 차례로 걷어내면서 진행하니 진짜 민망한 일은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그간 경험한 타이마사지와 별반 다르지는 않지만 오일을 바른 손으로 마사지를 받으니 마찰로 피부가 쓸려나갈 걱정을 안해도 되서 좋다. 끝내고 내려오니 고오오오급진 Mango Sticky Rice와 차를 내온다.
  오후 계획은 마무리 쇼핑인데, 그냥 BigC 마트나 가기에는 좀 아쉬운거 같아서 엊그제 갈 뻔한 시암파라곤을 갔다. 1층 푸드코트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돌아다니며 남들 뭐 먹고있나.. 살피니 1/3 정도가 전날 이사장이 먹었던 의문의 하이난식 치킨라이스를 먹고 있다. 이게.. 그렇게.. 맛있나 ??? 심지어 빕구르망이란다. (어차피 계산을 해야 하는) 이사장을 20분 정도 줄 세워 이 음식을 가져왔다. 보기와 전혀 다르지 않게 ! 별 맛이 없다.... 나의 저렴한 입맛에 별 감흥이 없다면 정말 맛이 없는건데 ... 대체 미슐렝은 왜 빕구르망을 준것이며.. 사람들은 왜 이걸 그리도 많이 먹는가.. 
  여튼 점심 먹고, 마트 구경 대충 하고 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고 있는데, 2층의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하행 에스컬레이터로 달려온다. 불인가 ? 총기난동인가 ? 사람들은 뭔 말을 할 정신도 없이 마구 달리고 있고, 말을 하더라도 태국 말을 모르니 알 수가 없다. 우리도 에스컬레이터를 내리자 마자 다시 하행을 타고 내려오는데 1층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건물 밖으로 달아나고 있다. 좀비 또는 재난 영화의 한 장면같다. 바닥에는 팽개쳐진 음식이 뒹군다. 누군가 아차하면 그대로 압사 사고가 날 판이다. 건물 밖으로 나왔어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전철 운행도 중지상태다. 그냥 하릴없이 숙소 방향으로 걷다보니 모든 건물이 마찬가지다. 잠시 휴대폰 인터넷도 원활치 않았는데 검색해보니 미얀마에서 큰 지진이 발생했다고 한다. 평소에도 항상 정체인 도로는 아예 막히다시피하고, 그랩 호출도 기약이 없다. 그냥 숙소까지 걷기로 했다. 인도도 사람으로 가득 차서 걷기가 쉽지는 않지만, 어차피 건물 진입이 금지된 상태라 굳이 숙소로 서둘러 갈 필요는 없다. 대로변에 백인 청년 두 명이 팬티 바람으로 어색하게 서 있다. 아로마 마사지 받다가 뛰쳐나왔나보다. 잠옷 차림으로 나와있는 사람도 많다. 걷고 또 걷는다. 그동안 하도 더워서 걷는 일이 무서웠는데, 이렇게 하염없이 걸으니 대략 해탈의 경지에 가까워지며 오히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내 발걸음이 가벼워지니 이틀 굶은 유원장이 나를 더 갈군다. 대략 7키로 거리를 세시간 동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지만, 예상대로 건물 진입 금지 상태다. 이제 들어가서 샤워하고 숙소 정리하고 빨래 해놓고 짐싸서 집으로 가야하는데...
  한 시간 넘게 마당에 주저앉아서 열심히 검색한 결과 공항은 현재 운영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짐만 챙겨 나오겠노라고 카운터에 사정하여 숙소로 올라갔다. 우리 같은 사정의 사람들이 꽤 있다. 어매나.. 39층에 위치한 우리 숙소 침실 벽에 선명하게 금이 가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태국 사람들 별 것도 아닌 지진에 뭔 호들갑을 이리도 떨까.. 우리나라 같으면 어지간한 지진 경보 따위엔 꿈쩍도 안하는데.. 생각했는데 이 모양을 보니 덜컥 겁이 난다. 1분만에 샤워하고 (그나마 동작 빠른 나만 샤워하고) 후다닥 짐 챙겨서 내려왔다.

  여행 전에 예약해둔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숙소에서 도로 진입하는 데에만 40분이 걸렸다. 그래도 이사장이 추우우웅분한 시간 여유를 두고 차를 예약해서 문제는 없었다.
  뜻하지 않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행군한 하루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