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이제야 멈추는 법을 배웠다

재준아범 2018. 6. 3. 09:51

지난 가을 노을공원에서 팀장들과 어울려 캠핑한 후에 삼계절침낭과 에어매트를 장만하고 봄을 기다렸건만, 허구헌날 미세먼지 농도가 높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회사 창립기념일로 생긴 이번 연휴에는 날은 좀 더워졌지만 미세먼지가 그나마 적당할거 같다. 봄을 내내 그냥 흘려보냈는데, 한여름이 되기 전에 한 번은 나들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어린애였던 시절에는 MTB나 로드와 같은 레저용 자전거는 없었고, 어른을 위한 자전거로는 쌀집자전거가 유일했던거 같다. 쌀포대를 바리바리 올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자전거가 꼬맹이 눈에 나름 대단했는데.. 캠핑용품을 올린 내 그란뚜르를 볼때마다 나는 항상 쌀집자전거 생각이 난다.


 

일찌감치 서둘러 8시에 출발한다.

잠실 인근 한강둔치에는 뽕나무가 꽤 있다. 오디가 다 익어 땅에 떨어질 정도인데 왠 아주머니 한 분이 오디를 따고 있다. 어이구.. 미세먼지에 농약 범벅일텐데..

덥다. 한여름이네.. 결국은 봄을 그냥 보내고 한여름에나 첫 캠핑을 나선거네..

워낙 일찌감치 출발한 덕에 천천히 달렸어도 점심때쯤 양평에 다다랐다.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양평시내로 들어가 적당한 식당을 찾는다. 어무이맛양평해장국이란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차들이 제법 많이 주차하고 있으니 맛집인가보다 싶어 들어간다. 맛집 맞네.. 네이버 리뷰도 많고.. 내 입맛에는 국물이 좀 맵긴 하지만 땀을 많이 흘린 상태라 싫지는 않다. 선지와 소 내장 건더기가 아주 푸짐하다.



이 아이디어 참 좋다. 태양광 발전설비를 길 위에 올렸다. 행인들에게 그늘도 제공하고 발전도 한다. 설비비는 좀 더 들겠지만 온실가스를 줄인답시고 풀과 나무가 자라는 땅을 밀어버리고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바보짓 보다야 낫지 않은가.

양평시내를 좀 벗어난 강변에 있는 김사장님 텃밭을 지나는데..어라 ? 차가 있다 ?? 이런.. 반가운. 막걸리 한 통 나눈다. 김사장님은 매주 금요일 휴일이라신다. 하긴 뭐.. 본인이 사장이시니 본인 맘대로..ㅎㅎ. 창업한지 얼마 됐다고 벌써 후계자를 키우고 계신다니 조만간 텃밭에 아주 눌러앉을 작정인가보다.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고나니 4시 가까이 되어 이포보를 지난다. 강을 거슬러가며 이포보를 보게되니 예전에는 안 보이던 비행기가 보인다. 긴~날개의 비행기가 꼬리를 강물에 박고 더위를 식히고 있는 모양이다. 허허..



여기서 잠시, 이포보캠핑장에서 잘 것인가 강천섬까지 달릴것인가 고민한다. 강천섬까지 간다면 녹초가 되겠지 ? 욕심부리지 않고 이포보캠핑장에서 멈춘다. 예약을 안했지만 원래 한가한 곳인데다 평일이라 현장에서 결재하고 자리를 잡을 수 있다. 데크가 엄청 넓다. 나는 딸랑 1인용 텐트 하나뿐인데..아깝다.. 옆 데크에서는 남자 넷이서 각자 1~2인용 텐트를 하나씩 치고도 데크에 자리가 남는다. 사진에서 멀리 보이는 시설들은 샤워장, 취사장, 화장실이다. 꺠끗하게 잘 관리되고 있고 뜨신물도 잘 나온다. 예전에는 여기가 무료였다고 하는데, 돈을 내더라도 (하지만 다른 캠핑장에 비해 저렴하다) 제대로 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게 좋다.



저녁시간이 될 때까지 캠핑의자에 앉아 멍때리고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나선다 (캠핑의 백미는 그늘에서 멍떄리기다). 캠핑장 근처에 천서리라는 동네가 있고 막국수촌이 형성되어 있다. 천서리라..동네 이름이 시원하니 국수도 시원하겠다. 여러 막국수집 중에 고민하다가 3대째 이어온 원조라는 집에 들어간다. 한가한 시골에 위치한 식당 치고는 손님도 많다. 뜨거운 육수부터 주는데..음..찐한게 맛있네.. 그런데 막상 막국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면발이..나는 메밀면이라면 뭔가 약간 거친 느낌이 좀 있는게 좋은데, 이집 면은 너무 부드럽다. 국물도 뭐 그저 그렇고. TV에도 나왔고 온갖 블로그에 리뷰도 많이 있는 집인데..내 취향의 문제인가보다..아무튼 곱배기는 괜히 시켰다.

천서리 편의점과 이포보 건너 하나로마트에서 오늘 저녁을 위한 막걸리와 안주거리, 내일 아침거리를 샀다. 캠핑장의 매점은 작기도 하지만 평일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다. 캠핑장에 돌아와 막걸리를 마시려니 잔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병나발을 불자니.. 주변에 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나를 뭘로 볼지 살짝 걱정된다. 컵 하나는 갖고다녀야.



일찌감치 9시에 텐트로 기어들어간다. 처음으로 내 텐트에서 잔다. 1인용 텐트는 정말 좁다. 몸 하나 들어갈 자리 말고는 없다. 그래도 에어매트 쿠션 덕에 침대가 아니어도 자리가 편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텐트 바깥엔 온통 이슬이 맺혀있다. 이 더운 날씨에도 그렇구나... 그래도 아침부터 해가 강렬해서 9시 쯤에는 다 마르고 일광소독까지 했다.

사과 한알과 컵밥으로 (맛있네) 아침 먹고 출발~ 강천섬가서 점심먹고 유턴하여 여주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매역까지 가서 탄천길을 따라 집에 가자는게 오늘의 계획이다. 여주보로 가는 길. 예쁘다. 노란 금계국과 하얀 망초꽃이 참 잘 어울린다. 언젠가부터 금계국, 꽃양귀비, 패랭이 등이 한강둔치 등을 장식하고 있다. 한포기한포기 심어줘야 하는 튤립이나 펜지 등에 비하면 대충 씨만 뿌려주면 잘 자라주니 사람들을 즐겁해 해주면서도 세금을 아끼는 기특한 꽃들이다.



여주보 주변의 잘 꾸며진 풍광이 날 잡는다. 어제에 이어 또다시 고민. 갈것인가 멈출것인가. 멈추자. 길을 달리는 것은 즐기기 위한 수단일 뿐. 이런 풍광을 그냥 스쳐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 이포보 매점에서 순한 소주 한병을 사서 (여기는 왜 막걸리가 없는거야 ?) 정자로 올라간다.




정자 위에서 점심때까지 눕다가 앉다가 하며 신선놀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라면에 햇반에 소주로 점심을 먹고 다시 눕다가 앉다가...

(정자에서는 취사금지라서 점심은 정자 아래 그늘에서 했다)



2시반이 넘어 아쉬움을 뒤로 하고 속세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