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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가족여행

재준아범 2019. 2. 3. 14:11

재준이 입대하기 얼마 전, 일본 남쪽의 온천 마을 우레시노를 다녀왔었고 이번에는 무사히 전역한 기념으로 방콕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다낭을 가볼까 했는데 1월말의 다낭은 거의 매일 비가 오는 우기라 하고, 태국 방콕은 지금이 건기라 여행하기 안성마춤인 계절이라고 해서 방향을 바꿨다. 다만 출발 며칠 전에 알아본 바로 그 동네도 미세먼지가 상당히 심하다고 해서 찜찜하기는 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래도 서울 보다는 살 만 했다. 여행사는 재준 여행사를 이용했다. 가족끼리 움직였기 때문에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했지만, 시간표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즉흥적으로 계획을 바꿀 수도 있어서 좋았다. 어차피 방콕 시내에서만 움직였기 때문에 공공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크게 불편함이 없었다.  

아침 6시15분에 출발하는 비행기라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몰고 공항으로 갔다. 다행히 마눌님께서 주차대행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가 있어 부담 없이 주차할 수 있었다. 차를 맡기고 출국장으로 올라오니 가족들이 무인 발권기에서 발권을 하고 있다. 덕분에 줄 서는 시간을 아끼고 여유있게 출국 수속을 밟았다. 비행기는 ... 아마도 프로펠러가 아닌 비행기 중에는 제일 작은 기종일 듯 하다. 저가 항공이라 기내식이나 음료 제공 없이 물만 주는데, 개인적으로 샌드위치 등을 준비해서 끼니를 해결하면 된다. 기존 항공사에서 해주던 영화나 음악 서비스도 없지만, 이 역시 각자의 폰으로 잘들 해결하고 있다. 이 항공사의 표어가 'new standard' 인 거 같은데, '기존 항공사의 쓸데없는 부가서비스 따위는 없애버리고 실속을 차리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다' 라는 메시지를 주는 거 같다. 근데... 딱히 저렴하지는 않은 ... 저가 항공이라고 좌석을 더 불편하게 만든거 같진 않지만, 그냥 이 나이가 되니 몇 시간씩 가만히 앉아있기가 힘들다.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돌아올땐 복도측 좌석에 앉아야지... 나는 낑낑대고 있는데 옆자리 젊믄 아들놈은 잘도 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태국은 온통 평지에 논밭이다. 태국 사람들은 배고플 걱정은 없었겠다. 비행기는 바다 위를 날아 남쪽에서 부터 방콕 수완나폼 공항으로 진입한다. 자동차는 영국식으로 (일본식으로?) 우리나라와 반대 방향으로 다닌다. 단독주택은 대개 솟은지붕에 2층으로 지어져있다. 아마도 열대 기후에 최적화된 형태의 주택 양식일 것이다. 착륙은 매우 거칠었다. 역시 저가항공이구나.... 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온다. 

공항 지하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갈 수 있다. 시내에는 몇 개의 전철 노선이 있고, 우리가 탔던 노선들은 모두 高架로 운행한다. 구내 방송에서는 영어로 'sky train'이라고 한다. 高架로 운행하는 전철은 지하철에 비해 공사비는 많이 절감되겠지만 지상의 가로와 건물에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어떤 구간에서는 급커브를 도느라 아주 저속으로 운행하기도 하고, 어떤 역은 좌우의 건물 사이 공간이 부족해서 플랫폼을 하나밖에 설치할 수 없어 좌우에서 오는 전철이 서로 지나가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Saphan Taksin 역). 이 역이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 가까운 수상버스 정거장 바로 옆에 있어서 우리도 몇 번 이용했는데, 처음엔 '이상하다..이상하다..' 하면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전철을 타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방콕 전철에도 노약자석이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승려도 대상자가 된다는 점이다.     

어쨋든 방콕도 교통체증이 상당한 도시라 전철이나 수상버스를 이용하는게 편하다. 공항철도는 다른 전철과 환승이 되지 않아 표를 따로 사야 한다. 공항철도 요금이 45바트, 시내 전철로 호텔이 있는 Surasak 역까지 여덟 정거장을 가는데 45바트가 들었다. 여기 전철은 출입문 근처에도 손잡이가 설치되어 있어서 편리했다. 중간에 지나친 시암역 주변은 아마도 방콕 최고의 번화가인 듯 하다. 여기도 쇼핑 겸해서 많이들 찾는 관광지 같다.



우리는 처음 이틀 동안은 Eastin Grand Sathorn 호텔에 묵었다. 시내 중심가에 가깝기도 하고, 호텔과 Surasak 역이 육교로 연결되어 있을 만큼 가까운데다가 주요 수상버스 정거장인 Sathorn Pier와 전철 한 정거장으로 걸어서도 갈 수 있을만큼 가깝다. 일반룸은 2인만 투숙이 가능하대서 Executive room을 예약했단다. 졸지에 사장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체크인 수속도 executive rounge에서 음료수랑 과자 대접 받으며 하고, 저녁 해피아워 시간에는 미니바에서 칵테일과 간단한 안주도 무료 제공한단다.

호텔에서 도보 거리에 있는 Than ying이라는 식당을 찾아 방콕에서의 첫 식사를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고, 열대 지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복을 입은 웨이터들이 서빙하는 고급 식당이다. 처음 먹어보는 현지식이라 다른 식당에 비해 얼마나 좋은지는 잘 모르겠는데, 동남아 음식을 꽤 좋아하는 나로서는 어느 식당이든 다 좋았던 거 같다.

식사를 마치고 왓아룬으로 가기 위해 그랩을 불렀다. 왓아룬 주변에는 아직 전철이 없다. 동남아판 우버인 그랩은 택시에 비해 저렴하기도 하지만 사전에 요금을 정해놓고 가기 때문에 바가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도로 위에는 일본차가 압도적으로 많다. 태국은 2차 대전 중에 일본과 동맹국이기도 했지만, 이후에도 이렇게 저렇게 일본과 잘 지내는 편인거 같다. 그렇다고 해서 당시 태국이 어떤 못된 야욕이 있어 일본과 동맹을 맺은 거 같진 않고, 그냥 옆에 있는 깡패 비위 거스르지 말고 적당히 맞춰주자는 취지에서 일본군에게 편의를 제공한 정도인거 같다.

불교의 나라인 태국은 일상에서의 인사도 불교식으로 합장을 한다. 어떤 나라는 국력을 기울여 성과 담장을 쌓았고, 어떤 나라는 왕의 주색잡기에 국력을 소모했지만 태국은 공들여 절을 짓고 탑을 올렸다. 당연히 우리 가족의 여행 일정도 절과 탑을 보는 둘러보는 일이 으뜸이었다.

왓아룬은 새벽 사원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의 탑들은 중국상인들이 두고간 자기 조각으로 겉을 장식했다고 하는데, 과연 가까이서 자세히 보면 간장종지나 접시를 이용해서 꽃 모양을 만들기도 하고, 자그마한 조각들도 뭔가 재활용의 흔적이 보인다. 중앙에 큰 탑을 두고 팔방에 작은 탑들을 배치한 모습인데, 불교적 세계관을 반영한 거라고 한다. 중앙의 큰 탑이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 또는 메루산이 되는 것이고, 팔방의 작은 탑(=산) 중의 하나에 인간이 사는 세계가 있는 것이다. 수미산에 쪼끔 올라가봤다. 비록 재활용품으로 지은 탑이지만, 태국 사람들 참 섬세하다.



왓아룬에서 나와 다시 그랩을 불러 타고 짝투짝시장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공공기관이나 왕가 관련된 시설을 많이 지나치는 거 같다. 그런 시설 앞에는 예외없이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다. 모든 화폐에도 국왕의 얼굴이 있다. 불교의 나라 태국은 또한 국왕의 나라이기도 하다. 우리도 여행 전에 국왕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국왕의 이름을 입에 함부로 올리면 큰 일 난다는 얘기를 듣고 갔을 정도였다. 지금의 왕은 모르겠지만 2016년 타계한 전임 국왕의 시대에는 (태국 현대사에는 쿠데타가 엄청 많이 있었다) 국왕이 동의하지 않은 쿠데타는 실패했다고 하니, 태국의 국왕이 비록 현실의 권력은 상실했어도 국민의 절대적인 존경과 사랑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국의 국왕들은 '왕과 나'라는 영화로 유명한 라마 4세 (현 국왕은 10세) 때부터 많은 왕족과 귀족의 자제들을 유럽으로 장기 유학시켜 선진 문물을 배우고 국제 정세에 대한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고 하니, 비록 제국주의 국가들과 불평등조약을 맺는 등 주권의 훼손은 있었지만 주변의 다른 나라들처럼 아예 식민지로 전락하는 비참함 만은 면했던 이유가 국왕을 비롯한 당시의 지배층들이 나름 정세 판단을 잘 해서 지혜롭게 대처한 공인 거 같고, 그것이 아직까지도 국민의 신망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한다. 이는 1919년 독립선언문에서부터 조선 왕조를 지우고 백성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 우리의 역사와 많이 다르니, 구한말과 대한제국 시절에 하는 일마다 사고를 친 조선의 왕족과 권문세가들은 이제 박물관의 전시물 신세일 뿐이다.  

짝투짝 시장은 주말 낮에만 열리는 시장이라는데, 엄청 크고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구경하는 재미가 난다. 우리는 말린 망고 외에는 물건을 사지 않고, 계속 군것질만 하면서 돌아다녔다. 파타야 먹고. 오렌지 주스 먹고, 쏨땀, 볶음국수, 닭국수 먹고, 먹고먹고...

공짜라니 꼬옥 챙겨먹어야지 하는 알뜰한 마음으로 호텔로 돌아와 미니바로 갔다. 칵테일 한 잔 하고.. 과자 좀 먹고.. 근처 식당에 나가서 저녁 먹어야지... 하고 갔더니... ? 어머나. 아예 작은 부페로 끼니를 준다. Executive room 본전 뽑았다~ 미니바의 부페는 열대 과일을 제외하면 유럽식으로 차려져 있고, 무엇보다 파란 곰팡이가 무럭무럭 자란 치즈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둘째날에는 왕궁과 왓포를 구경하기로 했다. 미니바 부페에서 아침을 먹고 동네 구경도 할 겸 Sathorn pier까지 걸어갔다. 수상버스는 어떤 깃발을 달았느냐에 따라 15바트~20바트 요금을 받는다. 전철은 거리에 따라 요금을 받는데, 수상버스는 멀리 간다고 요금을 더 받지는 않는다. 그 중에 노란 깃발은 중요 정거장에서만 멈추는 급행이다. Sathorn Pier는 일반 수상버스의 주요 정거장이기도 하지만 방콕에서 제일 화려한 백화점/면세점인 IconSiam,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쇼핑몰인 아시아티크, 기타 여러 호텔의 무료 셔틀 보트를 탈 수도 있는 정거장이다. 수상버스는 서둘러 타고 내리는게 버스와 다름이 없다.



방콕의 짜오프라야강은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폭의 큰 강이다. 한강 유람선 보다 큰 대형 유람선도 돌아다니지만 수상버스나 수상택시가 많다. 수상버스는 관광객도 일부 타지만 방콕 시민들의 대중 교통수단이기도 하다. 전철보다 요금도 저렴하면서 버스나 택시처럼 교통 정체를 걱정할 일도 없다. 한강은 넓고 멋진 고수부지 공원을 갖고 있지만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가야만 하는 단점이 있다. 고수부지의 공원 기능을 훼손하지 않은 채로 짜오프라야강과 같은 접근성과 즐길 거리를 갖출 수 있으면 좋을 거 같다.

Tha Chang 수상버스 정거장에 내리면 바로 왕궁이 보인다. 워낙 붐빈다 해서 서둘러 나왔는데 이미 인산인해다. 왕궁 입구로 들어가면 매표소 전에 일단 복장 검사부터 한다. 반바지나 민소매 등 복장 불량은 옆 사무실에서 옷을 빌려입고 입장해야 한다. 왕궁 뿐 아니라 왓아룬, 왓포에도 복장에 대한 주의가 있고, 법당에 올라갈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 규칙이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어기는 사람들이 가끔 보인다. 

왕궁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시설은 궁내 사원이다. 여기는.... 금이 많다...



열대지방에 평야도 넓어 식량도 풍부했을 것이고, 제국주의의 침탈이 있기 전까지는 지역의 맹주로서 현재의 라오스와 캄보디아, 말레이반도의 일부까지 조공국으로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니 당시에는 태국의 국력이 대단했을 것이고, 그런 국력과 불심으로 이렇게 훌륭한 유산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금으로 덮인 탑만 있는게 아니고 왓아룬처럼 자기로 장식된 탑도 있는데, 흐린 내 눈으로 봐도 재활용 재료를 사용한게 아니라 탑을 건립하기 위해 자기를 따로 구워서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의 배경 건물은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 쯤 되는 건물인거 같다. 사원 건물과 달리 아래는 유럽식으로 지어지고 지붕만 태국식이다. 재준이의 머리 위로 보이는 높은 발코니에 국왕이 나와 마당에 늘어서있는 귀족과 신하들을 내려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발코니를 기준으로 보면 이 건물은 북향으로 지어진 셈이다. 아무래도 더운 나라라 우리와는 달리 남향을 꺼리는게 당연하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둘러본 사원들의 주요한 법당들도 모두 동쪽과 서쪽으로만 출입문을 내었다.  



왕궁과 왓포는 남북으로 가까이 있지만 체력을 아끼기 위해 뚝뚝을 잡아타고 이동했다. 뚝뚝 비싸다... 왓포는 내국인에게 요금을 받지 않는다. 불공을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왓포는 거대한 와불로 유명한데, 누워계신 부처님의 발바닥은 마치 나전칠기와 같은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왓아룬, 왕궁사원, 왓포 곳곳에서 아래 사진과 같은 석상들이 있다. 열대지방의 사람들이 이렇게 옷을 껴입었을리가 없으니 암만봐도 중국풍이다. 아래 사진과 같은 문신의 상도 있지만 갑옷을 두르고 청룡도로 무장한 무신의 상이 더 많다. 중국과 태국은 어떤 관계였을까 ? 사진의 배경에도 보이지만 왓포의 불탑들도 아주 크고 화려하다. 대다수의 관광객들이 와불만 보고 가는 것인지, 불탑이 있는 이쪽은 한가하다.



왓포 경내 동쪽끝에 맛사지샵이 있다. 그야말로 원조 왓포맛사지인 셈이다. 소림무술을 소림사에서 구경하는 격이다. 30분 전신맛사지에 320바트를 받는다. 예전에 중국 단체 여행에서 사이비스러운 발맛사지를 받은 일 외에 맛사지는 처음이다. 꽤 아프지만 끝나니 날아갈 듯 하다.

왓포 근처의 길거리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두 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인데 주문이 밀려있다. 맛집인가...


 

왓포 앞의 선착장에서는 강건너 왓아룬으로 가는 셔틀보트 밖에 없다. 일단 그걸 타고 강을 건너서 다시 수상버스를 타고 Sathorn pier 로 돌아왔다. Sathorn pier 와 호텔 사이에 쇼핑센터가 있길래 지하 마트에서 쇼핑을 했다. 태국 필수 쇼핑 상품이라는 치약도 사고, 피시소스. 라면, 말린과일 등등.. 망고스틴과 람부탄은 생과일로 한 봉지씩 사서 여행 중에 먹었다. 열대 지방에 오니 열대 과일이 참으로 싸다. 길거리에서 즉석으로 껍질을 벗겨 잘라 파는 망고만 해도 열 번을 넘게 사먹었던 거 같다.  

호텔 미니바 해피아워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14층에 테라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풀장에 갔다. 첫날에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에 갔더니 공기도 식고 물도 차가워서 잠깐 몸만 담그고 돌아왔는데, 낮에 가니 시원하고 좋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재준이 왼편 유리벽에 경고문이 있는데, 영어와 중국어로는 '위험하니 난간에 올라 앉지 말라'고 써 있는 반면에 한국어로는 '풀장에 먹을 것을 갖고 들어오지 말라'고 써 있다. 허...


 

저녁을 먹고나서 밤 9시에 어슬렁어슬렁 호텔 근처의 주점을 가 봤다. 을지로 골뱅이를 연상시키는 포장마차형 주점에서 목살구이를 놓고 태국의 국민 위스키라는 쏨땀을 마셔봤다. 음...대학 시절 학교 공터에서 마시던 나폴레온 위스키를 추억하게 만드는 맛이다. 작은 병으로 주문했지만 반을 넘게 남겼다. 기본으로 나오는 채소에는 껍질콩이 생으로 놓여 있다. 껍질콩을 생으로도 먹는구나... 



세째날 오전에는 전철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룸피니 공원을 구경했다. 방콕판 하이드 파크나 센트럴 파크 쯤 되는 도심의 대형 공원이다. 헉. 도마뱀이다. 큰 녀석은 2미터 쯤 된다. 최대 4미터까지도 자랄 수 있는 모니터 도마뱀이라고 하는데, 하도 많아서 퇴치 작전을 벌이기도 했단다.


 

공원 산책을 마치고 호텔을 옮겼다. 하루 정도는 리조트형 호텔에서 노는 것도 좋을 거 같아 Anantara Riverside Bangkok Resort를 예약해두었다. Sathorn pier에서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보트를 타고 15분 쯤 가면 된다.



호텔에 도착하여 일단 짐을 맡겨놓고 맛사지를 받으러 간다. 맛사지에 맛 들렸다~ 이 맛사지샵은 개인별로 어두침침한 방에 들어가서 맛사지를 받게 되어있다. 음.. 이거 뭔가.. 했지만 건전한 곳인 거 같다. 2시간 동안 맛사지를 하면서 맛사지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하필이면 이틀전 두 명의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을 토막살인한 죄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런 나라망신... 귀국하고 나서는 우리가 태국에 들어오던 날 어떤 한국인 여자가 몸수색하는 공항 직원의 뺨을 때려서 벌금을 물었다는 뉴스도 들었다. 왜들 그러냐...

맛사지를 받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가 식당에서 소고기 쌀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메뉴판을 달라하니 'only one menu'라고 해서 주는 대로 먹었다. 가만 보니 우리한테는 국물 국수를 줬는데 볶음 국수를 먹는 사람도 있고, 어묵 같은 고명을 얹어먹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 메뉴는 국수 한 가지지만 선택사항은 있는 거 같은데 영어 메뉴가 없는 현지인용 식당이라 방법이 없다. 나는 large를 주문했는데 마눌님과 재준이는 small을 선택한다. 배 고프면 물놀이 못할텐데... 했더니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망고찰밥 (망고 스티키라이스) 에 아이스크림 군것질을 한다. 역시...다 계획이 있었던거야... 

이 리조트의 풀장은 깊은 데가 3미터나 되어서 물놀이 할 기분이 난다. 조그만 온탕도 따로 있다. 여기서도 모니터 도마뱀을 발견했다. 리조트에 서식하는 도마뱀 답게, 관광객을 위해 민물게를 한 마리 사냥해서 꿀꺽하는 진귀한 모습도 보여준다. 고객 서비스 굿.



인터넷에서 왓아룬을 검색하면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야경 사진이 주로 등장하는데 우리는 낮에 갔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았다. 호텔 셔틀보트를 타고 Sathorn pier로 돌아가서 저녁 8시 까지 운행하는 노란 깃발 수상버스를 잡아타고 기어이 왓아룬의 야경을 감상했다. 우리 가족 외의 승객들은 모두 현지인들이라 대부분 심드렁하니 고객 숙인체 폰만 만지작거리고 있고, 우리만 신났다.


가는 도중에 디너크루즈 유람선도 몇 보였지만 거의 빈 배로 운행하고 있었고, 페닌슐라호텔 (객실 요금에 포함된) 쿠루즈만 그나마 손님들이 많다. 욧시암 보트라는 것도 봤는데, 뱃머리에서 술마시고 춤추고 아주 난리가 났다. 90% 이상이 한국인 관광객이라는 유람선이다. 뭐.. 그런 류의 관광도 개인의 취향이니 욕을 할 수는 없겠으나 ... 왜 내가 쪽팔릴까...

왓아룬을 금방 지난 Wang Lang pier에 내려서 근처의 Suwanna Wanglang 이라는 식당을 찾아갔다. 구글 지도에서 찾아냈지만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에게 맛집으로 통하는 식당이고 어둡고 복잡한 시장통에 자리했지만 내부는 아주 깨끗하다. 우리만 관광객인 듯 했고,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구글 번역기를 동원하기도 했지만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런 식당이었다. 똠양꿈, 뿌팟봉커리, 팟타이, 볶음밥, 도미튀김파피야샐러드를 먹었다.



만족스럽게 저녁을 먹고 그랩을 타기 위해 큰 길로 향하는 시장길은 저녁 8시가 다 되었는데도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상들이 성업중이다. 그들 중에 각가지 향신료와 향채소를 절구에 넣고 빻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두리안 처럼 생긴 커다란 과일을 해체하는 모습도 봤는데, 두리안을 실물로 본 적이 없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마눌님은 두리안 치고 너무 크고 과육이 뺀질뺀질하게 생겨서 이상타 한다. 마침 다음날 아침 호텔 부페에 지난 저녁에 봤던 과육이 나왔길래 점원에게 물어보니 두리안이 아니라 잭프루트라는 과일이란다.

방콕의 마지막 밤이니 시원한 바람 맞으며 기분 한 번 내보자는 취지로 우리가 묵는 호텔 바로 뒤에 있는, 마치 한 집처럼 붙어있는 또 다른 호텔의 고급진 루프탑 바에 올라가 한 잔 씩 놓고 야경을 보며 여행을 정리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짜오프라야강 건너편의 동그란 바퀴는 아시아티크의 대관람차.



쇼핑한 물건들 때문에 짐이 많아져 걱정했는데 마눌님께서 접는 가방을 준비해오셨다. 역시 해외여행 경험이 풍부하시다. 공항철도 타기 전, 마눌님과 재준은 마지막 길거리 망고를 사먹기 위해 내게 짐을 맡기고 잠시 다녀온다. 망고를 향한 그 집요함....

수완나폼 공항에서 우리가 비행기를 타야 할 게이트가 G1A 인데, 앞의 G를 Gate로 이해하고 A 게이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큰일 날 뻔했다. 뒤늦게야 잘못을 깨닫고 G 게이트까지 1키로가 넘는 거리를 질주. 1년 동안 아껴써야 할 소중한 무릎연골을 10분만에 소모한 듯 하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나로서는 이번이 첫 동남아 여행이었다. 대도시에서만 시간을 보내어 자연 경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이루어놓은 유산으로 평가하자면 유럽에 비해 더 좋은 볼거리가 많았던 거 같다. 남의 나라 물건 약탈해서 자기네 박물관에 갖다놓은 전시품 제외하면. 내 취향에 맞는 맛있는 먹거리도 좋았고. 무엇보다 사람들의 외모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마음도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