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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만의 대전

재준아범 2019. 10. 2. 12:52

부산 다녀온 이야기를 이구회 카톡방에 공유하니 룡박사가 대전은 왜 놀러오지 않느냐며 투덜거린다. 마침 경기도에 있던 깜회장이 몇 달전에 대전으로 옮겼으니 룡박사도 볼 겸 깜회장도 볼 겸 대전 1박2일을 추진하게 되었다. 룡박사는 대학 졸업하고부터 쭈욱 대전에서만 살아왔으니 토박이나 다름없다. 아주 훌륭한 대전 여행 가이드가 될 듯 하다. 나로서는 2009년 말 MBA 교육생으로 선발되어 대전 연구소를 떠난 후, 클라우드 업무 관련으로 두 번 쯤 전자통신연구원 방문한 김에 현지 친구들 만나 저녁먹고 올라온 일을 제외하면 1박까지 계획하고 다시 대전을 오기는 이번이 10년만이다. 고즈넉한 가을 갑사 계곡에서 막걸리 한 잔....ㅎ...

이기사는 11월이나 되어야 시간을 낼 수 있다는데, 겨울 다 되어 놀러오면 무슨 재미랴 싶어 이번에는 이기사 빼놓고 이전무와 유원장까지 셋이서 간다. 나는 사무실에서 출발하느라 따로 성남터미널에서 출발했다. 태풍 미탁이 온다. 내일 저녁까지 강풍을 동반한 비가 온다는데.. 혹시 이기사가 심통을 부린것일까..

10년 동안에 뭐가 변했을지 궁금하여 고속도로를 벗어나고서 부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창밖을 내다보게 된다. 북대전IC 통과하면 곧 나오는 굴다리 위로 고가로가 새로 생겼다. 다음날 찾아간 한밭수목원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유성터미널에 내려서 곧 이전무, 유원장과 합류했다. 유성터미널은 예전 그대로, 너무 좁고 초라하다. 근처 전철역 옆으로 이전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택시를 잡아타고 반석역 근처 깜회장 회사 복지회관에 도착했다. 언제나 공사다망한 깜회장은 다른 일정으로 밥만 먹고 금방 가고 나머지 넷이서 고기 구워먹고 라면도 시켜 먹었다. 후식은 아이스크림에 카푸치노를 끼얹어 먹는.. 이름이.. 뭐랬는데.. 까먹었다. 복지회관 수준이 호텔급이다. 같은 건물 3층의 숙소로 올라오니 이 또한 호텔이다. 특실이란다. 친구 잘 둔 덕에 여러모로 호강한다. 

TV 화면에 돼지 한 마리가... 저 돼지도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좀 보내버리면 좋겠는데...

저녁 잘 먹고 숙소로 올라온 이전무는 난데없이 속이 안 좋단다. 식당에서는 내가 라면 남기면 자기가 마저 다 먹어주마 하고서는.. 맨날 저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는 가잔다. 속 안좋은거 맞냐... 미탁이가 뿌리는 세찬 비를 뚫고 카페 찾으러 나간다. 조그맣지만 산책로까지 잘 정비된 개울 근처에 카페가 세 개 몰려있다. 그 중에 사이애 (뭐와 뭐 사인가... 했더니 불어로 ca y est 라는,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관용구란다. 우리 말로 하자면 '됐다' 나 '오케바리' 쯤 되는거 같다) 라는 집으로 들어가서 음료와 당근케이크 먹었다. 실내 인테리어가 약간 과한듯 하면서도 나름 아기자기하다. 미탁이 때문인지 카페가 한가하다.

서비스로 나온 과테말라 커피. 사장님께서 스모키 향이 어쩌구 뭐라고 설명해주시긴 했는데.. 뭐 내 입은 그런거 잘 모르겠고.. 커피를 담아 나온 앙증맞은 잔이 탐난다. 요 잔에 소주를 부어 마시면 폼 좀 나겠다.

방은 넓은데 침대는 하나다. 우린 깔끔해서 한 침대에 둘이 올라가지 않는다. 유원장은 침대를 차지하고 나는 소파를 택했다. 이전무는 방바닥을 마다하지 않는다. 음.. 전통 생활양식을 아직 간직하고 있군...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는 바닥이 딱딱해서 제대로 못 잤다고 투덜거린다. 미탁이 진행 속도가 예상보다 빨라졌다는 소식에 내일 오후엔 우산 없이 다닐 수도 있겠다 하며 잠들었는데, 이기사의 심통은 쉽게 풀렸는지 아침에 일어나니 드문드문 파란 하늘이 보인다. 나이스.

유성 복집에 가서 복해장국으로 아침식사. 깜회장이 서울의 아파트 분양받은 얘기를 계기로 열심히 집값 얘기들을 한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불로소득이 좀 과한 나는 슬그머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계룡스파텔은 사우나가 두개다. 한쪽은 크고 저렴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다 하고, 다른쪽은 비싼 대신에 아담하고 한가하단다. 나름 현지 유지인 깜회장과 룡박사 덕에 할인이 좀 될 수 있을까해서 비싼쪽으로 갔는데 두 사람의 직계가족까지만 할인이 된댄다. 잠깐 '아빠'하고 불러봤으나 카운터 아가씨가 바보가 아니라서 안 속아준다. 뭐.. 그렇다고 크게 비싼건 아니니... 간만에 제대로 미끌미끌한 온천물에 몸 좀 담궈봤다. 사우나를 마치고 나가는 길에 보니 근처에 무료 족욕탕도 두 군데나 있다. 

엑스포 남문광장에서 맥도날드 다리와 한빛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 한 장. 나무로 가려서 보이지 않지만 배경의 왼쪽이 예전 엑스포 공원이다. 엑스포 공원의 전시관 건물들은 이제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현재도 많이 신축중이다. 배경의 왼쪽에 스마트시티가 보인다. 10년 전에는 그쪽으로도 건물이 몇 개 없었는데 이제는 많은 화려한 건물들이 들어차 있다. 골프채 아이언 헤드처럼 생긴 건물이 있길래 물어보니 골프존 사옥이란다.

'남문'광장에서 남문이 없어진 대신 광화문 광장보다 큰 야외 시설이 생겼다. 열린 음악회도 가능할거 같고, 월드컵 같은 이벤트에 거리공연도 할 수 있도록 거대한 스크린과 이동 가능한 지붕 시설을 갖춰놓았다. 광장 좌우로 각각 한밭수목원 동원과 서원이 있다. 서원은 수목원 컨셉이고 동원은 정원 컨셉인듯하다. 서원에는 소나무숲과 연꽃 습지가 있고 동원에는 장미정원, 허브정원에 작은 동산까지 조성해놓았다.

서원의 연못을 배경으로. 사진 오른쪽의 잠자리 날개를 배경으로 찍어야 한다는 룡박사님 말씀에 따라.

이 풀 이름...알았었는데... 뭐였더라... 뭐든 잘 잊어먹는다... - - 

동원에 조성해놓은 작은 동산 위에서 둔산쪽을 바라보며 찍었다. 뒤로 대전정부청사가 보인다. 활엽수와 침엽수, 초본과 목본을 적절히 잘 배합해서 보기에 너무 좋다. 

10년전에, 이 자리에 수목원을 만든다 해서 아스팔트 위에 나무 좀 심어봐야 뭔 폼이 나오려나 했는데.. 이렇게 예쁘고도 푸근한 수목원을 만들다니.. 대전 사람들 대단하다. 여태껏 내가 구경해본 그 어떤 수목원이나 정원보다도 훌륭하다 인정 !

수목원 볼거리가 많아 점심이 늦었다. 한시나 되어 솔밭묵집에 도착했다. 이 집은 10년만에 왔는데도 변한게 없다. 야외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지만 자리가 없어 잠시 기다리다 실내로 들어갔다. 간만에 채묵을 먹는다. 원래 따뜻한 국물에 내어 오던 음식이었던가 ? 채묵에 백숙을 시키고 양이 모자랄라나 걱정했는데 죽이 따라나온다. 대전 브랜드라는 원막걸리는 내 입맛에는 좀 달다.

갑사가는 길. 멀다... 동학사는 대전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저런 행사로 자주 가기도 하고, 특히나 벚꽃철에는 너무 부산스러운게 도시 못지 않아 갑사를 택했는데... 멀다. 주차장에서 갑사가는 길가의 나무들은 다들 몇백년은 살아왔는지 하나하나가 전설의 고향 느낌을 풍긴다. 밤에 보면 무섭겠다.

그만큼 갑사 가는 길은 고즈넉하다....했는데... 낙엽 치우는 송풍기의 소음이 분위기를 깬다. 가을 산길에 낙엽이 있는걸 굳이 왜 치우는건지... 거기에 갑사는 온통 공사 중. 생각해보면 여기저기 큰 절마다 공사중이 아닌데가 없다. 돈 생기면 건물부터 짓고보는 부동산 욕심은 속인과 승려의 차이가 별로 없는 듯 하다.

갑사를 둘러보고 내려가는 길에 애처가 깜회장과 이전무는 노점에서 밤과 은행을 진상품으로 장만한다. 착한 친구들.. 깜회장은 생것을 사고 이전무는 구운것을 장만했으니 굳이 우열을 가리자면 이전무의 충심이 더 깊다 하겠다. 

갑사에서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하는 룡박사가 길을 돌아 세종시와 세종호수공원을 구경시켜준다. 세종호수공원은 일산호수공원의 세종시 버전 쯤으로 생각하고 그냥 차에 탄 채로 지나치면서 구경할까 했지만 언뜻 보이는 풍경이 참 좋아서 차를 세우고 잠시 감상했다. 자전거 타고 한바퀴 돌면 대략 30분쯤 걸릴 거 같다. 나의 자전거 여행 버킷리스트에 한 줄 추가. 역시... 여행 가이드 말씀은 들어야 한다.

세종시부터 대전 구도심 입구까지는 자동차 전용의 고속화도로가 있다. 주중의 휴일이라 그런지 언제나 붐비던 대전 구도심 지나가기도 비교적 수월하다.

조금 떨어진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성심당엘 가니 작지도 않은 매장에 사람들이 빈틈없이 빼곡하다. 나는 별 고민 없이 튀김소보로 6개 들이 세트를 세 개 샀다. 두 개는 오늘 방문객들 때문에 (혹은.. 덕분에 ??) 독수공방하신 현지인들의 사모님께 바치는 선물. 우리 애처가 이전무는 여기서도 매우 신중하게, 매장을 열바퀴쯤 돌며 가지가지로 많은 진상품을 장만했다. 정말 모범적인 남편이다. 서울 갈 일이 아득하여 저녁식사는 간단하게 빵집 2층의 테라스키친에서 해결했다. 저렴한 가격에 맛도 좋고 양이 푸짐하다. 밥을 덮어싼 노오란 계란 보자기 모양이 예술이다.


 양이 하도 많아서 나는 카레돈가스를 먹다가 밥을 약간 남겼다. 어제 저녁부터 시작해서 아직까지도 속이 좋지 않다는 이전무는 그 많은 식사를 가장 빨리 해치웠다. 너 정말 속 안좋은거 맞냐... 저녁식사를 마치고 주차장 가는 길에 잠시 성심당 주변 골목을 둘러본다. 대전의 중앙로 근처다. 으느정이 문화의 거리라고 한단다. 젊은이들로 붐비는 화려한 거리다. 비를 가리는 가로의 지붕을 스크린으로 만들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기념사진을 찍은 직후에 깜회장 회사의 어린 직원을 마주쳤다. 깜딱야... 후배를 많이 둔 나이든 사람들은 어딜 가든 행실을 조심해야 한다.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현지인들과 인사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귀경한다. 대전터미널도 크게 변했다. 룡박사 투어가이드 덕에 이틀은 걸릴 일정을 하루만에 다 소화한, 보오람찬 하루였다. 

이렇게 지방 사는 친구들을 찾아 강원도-경기도-부산-대전을 돌았다. 전라도엔 왜 아무도 살지 않는거야.... 이제 행방불명된 수도권 녀석들을 찾아나서 볼까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