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에 퇴사하여 회사를 경영하다 현재는 사실상 은퇴한 입사동기 김사장께서 작년부터 양평에 별장을 지어오고 있었다. 한동안 집짓기 학원을 다니다가 학원에서 만난 사람 2명과 힘을 합해 직접 짓는다고 하면서 공사 진척 상황을 카페에 종종 올리더니 작년 여름쯤부터 소식이 끊겼길래 무슨 문제가 있는가 했다. 이번에 가서 얘기를 들어보니 내장 공사부터는 혼자 진행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 큰 일을 어찌 혼자서 ...
3월초에 청계산 입구에서 동기 몇이 만나 산행한 척 기념사진만 찍고 족발에 막걸리 한잔 하면서 김사장님한테 안부를 물으니 4월9일에 놀러오란다.
마침 벚꽃이 만개한 시기, 나와 택상무는 팔당역 근처 초계국수집에서부터 자전거로 동행하고 연팀장과 치교수는 따로 차를 몰고 왔다. 원래 함께 하기로했던 현상무는 치통이 도져 기권했다. 택상무는 청계산입구역 근처에서부터 자전거로 출발했으니 무려 70키로 길을 나선 셈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운이 넘친다. 젊었을 때부터 소문난 그의 막강한 체력은 세월도 어쩌질 못한다. 나는 택상무를 따라가느라 체력을 시험받고, 택상무는 느린 나를 견디느라 인내심을 시험받은 자전거길이었다.
목적지에서 멀지 않은 양평 갈산공원을 진입하니 많은 사람들이 벚꽃터널을 즐기고 있다. 벚꽃길은 김사장님의 별장 앞을 지나 후미개고개 앞까지 계속된다. 딱 좋은 날을 잡았다. 별장 앞 자전거길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긴다.
대략 3시가 조금 넘어 도착하니 김사장과 동갑이라는 동네 친구분이 커다란 항아리속에 제주돼지오겹살을 갈고리로 매달아 훈제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느타리 농장을 크게 운영하는 분이라는데 농장에서 오전에 수확해 가져온 느타리가 참 예쁘고 통통하다. 훈제 오겹살에 느타리버섯 구이, 새싹삼에 부추, 참나물 등을 곁들이니 아직 해가 쨍한 이른 시간부터 술이 잘도 들어간다. 새싹삼은 퇴사하고 천안으로 귀농한 동기 헌사장이 보내준 것이다. 말은 새싹삼이라는데 뿌리가 제법 굵다. 1년근쯤 되지 않을까 ? 색이 약간 거뭇한 것들이 조금 섞여있어서 혹시 상한 것인가 ? 했는데 나중 물어보니 더덕이란다. 여러가지로 몸보신 하겠다.
좋은 봄날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 보약같은 음식을 먹으니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우리가 둘러앉은 이 식탁은 김사장이 손님 맞이를 위해 1.5일 일해서 뚝딱 만들어냈단다. 집 한채를 지어놨으니, 이 정도는 식은죽 먹기로 하는 고급 기술자님이 되셨다.
한 차례 배불리 먹고 숨고르기를 위해 느타리 농장을 견학했다. 규모가 크다. 연 매출 10억에 사용 전력이 300키로와트라 하니 농장이라기 보다는 공장이라고 하는게 맞겠다. 공장 여기저기서 경계근무?중인 강아지도 무려 세 마리나 된다. 농장 옆 컨테이너 건물에는 사모님이 몇 년 전부터 시작했다는 한지공예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한지로 갖가지 소가구들을 만들어놓았다. 나름 나전칠기 가게집 아들인 내 안목으로는 논현동 가구거리에서 한자리 차지해도 꿀리지 않을 듯 하다.
2차는 집 안으로 들어가 2층 거실에서 하기로 하여 비로소 집을 제대로 둘러보게 되었다. 마당은 아직 건축자재나 흙더미가 쌓여있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집은 각종 내장공사와 가구 배치가 거의 마무리되어 있었다. 1층은 화장실과 싱크대가 딸린 원룸이 좌우로 하나씩 있어 여행객이나 세입자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고 별도로 한쪽 구석에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작은 작업실도 꾸며놓았다. 2층은 집주인을 위한 공간으로 거실, 침실, 주방이 있고 거실보다 널찍한 베란다가 특별하다. 나중에 김사장님 손주가 생기면 이 베란다에 풀장 하나 만들어서 꼬마들 놀게해도 되겠다. 집을 짓는 일이 그냥 기술자들 몇 모여 대충 뚝딱쿵쾅 진행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김사장님이 노트북에서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띄워 보여주는 설계도를 보니 엄청나게 세밀하고 정교하다. 마치 반도체 회로 설계도를 보는 듯 하다. 김사장님을 건축 전문가로 인정합니다.
2차 요리의 주 재료는 인근의 남한강 어부에게서 구한 메기다. 택상무가 팔을 걷어부치고 매운탕을 끓였다. 숙수의 솜씨가 탁월한건지 우리 입맛이 막걸리와 소주로 둔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평생 먹어본 매운탕 중에 제일 맛있었다. 먹고 마시고 수다떨며 밤이 깊어간다. 입사 초기의 재미있는 얘기들이 이것저것 나오던 끝에 보름달이 화제로 올랐다. 한때 유명했던 보름달이었건만 지금 와서는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름달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실패한 우리는 결국 보름달 사건의 장본인을 포함하여 이런저런 동기들에게 전화까지 돌리고 ... 결국 2시간 정도 걸려 보름달은 특정 되었지만.. 그래도 긴가민가하다. 역시 술취한 인간들은 씰데없는데 힘을 쓴다. 매운탕 숙수 택상무는 매운탕 국물에 마무리 라면까지 끓여주고는 보름달 보다는 별이라며 별구경 한다고 밖으로 나가버렸고(별장 앞 자전거길에 한동안 드러누워있었다는 소문이... 자전거에 밟히면 어쩌려고...), 보름달에 심취하다못해 맥주에 푹 빠진 치교수는 자리를 파하고 뒷정리를 하는 와중에도 횡설수설 깐죽끼죽대며 옆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
새벽 3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어 9시 넘겨 일어났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과하게 놀 나이가 아닌데 ... 끙. 인근에 유명하다는 개군할머니토종순대국집에서 아침겸 점심 해장하자고 하여, 나와 택상무는 자전거를 끌고 먼저 출발했다. 팔팔한 컨디션으로도 못 넘을 후미개고개를 숙취에 절은 중년이 어찌 넘을꼬.... 반도 못 오르고 자전거에서 내려 끌바하여 넘었다. 초울트라막강슈퍼파워 택상무마저 결국은 끌바를 한다.
거~한 순대국 한 그릇씩 하고 해산. 나와 택상무는 이포보 여주보를 거쳐 여주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매역까지 와서 탄천을 따라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