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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대게의 길

재준아범 2023. 12. 9. 08:34

  친구들과 백암온천 한화리조트로 놀러갈 계획을 앞두고 감기에 걸려버렸다. 골골한 몸으로 놀러갈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감기약을 먹었다. 평생 이렇게 감기약을 열심히 먹었던 적이 있었나 ? 덕분에 탈나지 않고 친구들한테 감기 선물도 하지 않고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  

  2023년 12월 3일. 아침 8시 유원장 집 근처 주차장에 집합. 이사장이 늦는다. (이전무가 2년간의 폐관 수련 끝에 절세 신공을 터득하여 사장으로 승격했다) 차를 움직여 무학여고 정문 앞으로 마중 나가 계획보다 30분 늦게 출발한다. 신분당선 전철 고장으로 늦었다고 하지만 고문끝에 자백을 받아보니 애초 집에서부터 출발이 늦었다. 아침 간식거리로 이사장을 질겅질겅 씹으며 갈까 했지만 이사장이 풀어놓은 간식보따리와 태국여행 얘기보따리로 대신했다. 간식 중에는 절대 출처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보약도 있었고, 특히나 감기로 쇠약해진 나를 위해서는 2인분을 준비해왔으니... 음... 여러모로 기특한 점이 많은 녀석이다. 지각을 용서한다.

  백암온천은... 멀다. 유원장의 안전방어 운전으로는 날 샐거 같아 중간에 과속난폭운전 이사장으로 운전 교대했다. 잘~ 간다. 나중에 딱지 몇 개 날라올 수도 있겠다. 울진에 도착해서 산수옥이라는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럭저럭 괜찮다. 이번 여행중에 찾은 식당 중에는 제일 나은 거 같다. 사실 이쪽은 워낙 수도권과 멀기도 하고 딱히 대단한 뭣도 없어서 아싸한 식당을 찾기가 힘들다.

  점심을 마치고 왕피천은어길 산책에 나섰다. 옛날 어느 나라 왕이 피난을 왔다하여 왕피천이란다. 물이 참으로 맑다. 사람 키보다 깊은 부분도 바닥까지 훤히 보인다. 친구들은 은어가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원래 철든 물고기는 낮에는 안 보이는 법이다. 피라미 같은 녀석들은 많다. 혹시.. 은어 새끼인가 ??

왕피천은어길은 봇도랑길이라고도 한다. 상류의 보에서 하류의 논으로 물을 대기 위해 시멘트로 수로를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물이 지나가는 자리에 흙이 메워지면서 자연적으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되어버렸다. 여행객을 위해 조성한 길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중간 끊기기도 하고 낙석 위험이 있는 구간에도 별다른 안전시설이 없다.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럽다. 편도 2.2키로라고 하는데, 대체 어디가 끝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지라 대략 3/4 정도 가다가 돌아나왔다.

  왕피천 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중간에 위치한 월송정을 둘러봤다. 중국에 있다는 일송정과는 아무 상관없다. 관동팔경의 하나로 꼽는다는데, 그냥 둘러보기에는 역시나 싱겁다. 정자 위에 자리 펴고 동해 바다를 내려다보며 막걸리 한 잔 할 수 있다면 꽤나 운치있겠지만, 날도 춥고.. 고발 당할거고 ..

월송정을 구경하고서 근처 구산블루스라는 카페에서 휴식. 원래의 계획은 월송정카페를 가는 것이었지만, 월송정 배후의 주차장 한가운데에 위치하여 (대체 이런 장소에 왜 카페를 !!) 소나무숲과 자동차 말고는 아무 볼 것이 없는 곳이더라더라더라... 나는 마지막 남은 감기 부스러기를 털기 위해 라떼 대신 생강차를 마셨다. 이기사도 덩달아 생강차를 마셨다. 나는 차만 마셨는데, 이기사는 그 많은 생강을 다 씹어먹었다. 이렇게 독한 놈인줄 미처 몰랐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구산해수욕장은 백사장도 괜찮고 나름 분위기 있게 꾸며놓았다. 예전에 대부도 놀러가서 쿠바 기분내며 즐겼던 뻘다방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남미 바닷가 느낌 나겠다. 

  구산블루스와 숙소 사이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 쓸만한 식당도 못찾겠고 .. 어두워지니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 음...산...하...다... 근처 하나로마트에 들러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사서는 (6시에 마트 문을 닫는단다 !!) 숙소 근처 식당에서 버섯전골로 저녁을 먹었다. 숙소 쪽은 그나마 관광지라 식당이 좀 있다. 

  원래 내가 제안했던 2일차 일정은 주왕산+푸른대게의길+등기산스카이워크 였으나, 나 스스로도 아침 7시반에 숙소를 나와서 하루 종일 행군을 한다는게 부담스러운지라 주왕산 코스는 빼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유원장 주식투자도 다 마치고 느지막히 숙소를 나와 등기산스카이워크를 찾았다.

스카이워크 위에서 등기산 공원을 배경으로 한 장 찍었다.

스카이워크 하나만 달랑 있으면 그냥 월송정처럼 싱거운 코스가 될 뻔 했는데, 등기산 위에 사진찍기 좋은 예쁜 공원을 꾸며놓아 이 사진 저 사진 찍으며 의외로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점심은 후포항 근처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바지락 아닌 뭔가 좀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조개가 들어가서 맛은 있었는데 우리 배에는 국수 양이 적어 공기밥을 세 개나 추가해서 말아먹었다. 특히나 국수 먹는 속도가 느린 이사장은 한공기반.

  영덕해맞이 공원에 차를 놓고 영덕블루로드B코스, 푸른대게의 길을 걸었다. 여러 사람들이 동해안 산책길 중에 으뜸으로 꼽고 있고, 과연 좋았다. 얼마전에 입사동기들과 다녀온 바다부채길과 마찬가지로, 예전에 해안 경비하는 군인들이 다니던 길을 보강하여 산책길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코스 전체는 15키로쯤 되지만, 연로하여 거동 불편하신 친구 녀석들은 얼마 못 가서 가다서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결국.. 3.5키로 쯤 가다가 산책 끝. 영덕해맞이공원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걸어서 갈 수는 없고 .. 버스는 안보이고 .. 카카오택시 호출도 안되고 .. 이리저리 알아보다 어찌어찌 콜택시를 불러 무려 18,000원을 내고 해맞이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일1카페의 원칙에 따라 공원 근처의 카페를 검색. 바움 카페라는 곳을 찾았다. 바다뷰 맛집이다. 

  원래 2일차의 저녁은 영덕대게를 먹을까 했으나 택시기사가 아직 대게는 이르다하여 축산항에서 물가자미 정식을 먹었다. 물가자미 막회, 물가자미 식해, 물가자미 구이, 물가자미 매운탕에 라면사리. 숙소에 돌아와서 각자의 음료수를 앞에 두고 다음 여행 얘기를 했다. 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어쨋든 결론은 내년 4월 초 경주. 벌써부터 기대된다.

  3일차 아침. 아무리 한 물 갔어도 명색이 온천 관광지라는 곳에 왔으니 그냥 떠날 수 없어 사우나를 다녀왔다. 나 혼자서. 물 참 좋다. 역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온천이다. 해장 라면을 끓여먹고 유원장 주식투자까지 다 마치고 여유있게 아침 일정을 시작했다. 죽변항스카이레일. 일종의 레일바이크인줄 알았는데 타보니 전기의 힘으로 스스로 간다. 연로하여 거동 불편하신 친구 녀석들이 너무 좋아한다. 여튼 해변길 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더 좋네. 근처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비빔짬뽕면으로 점심을 먹고 동해안을 떠났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이사장이 강력 추천한 뮤지엄산. 음... 수준 높군. 그 유명한 안도타다오가 설계했단다. 뮤지엄이니 그 안에 이것저것 전시물도 많이 있지만 무엇보다 건축물 자체가 예술이다. 예술사진 많이 찍고 왔다. 이렇게 좋은 곳을 시커먼 놈들끼리만 왔다는 게... 억울하다.